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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관을 태극기와 교회기로 덮어 달라” 김선도 목사 유언

문윤홍 대기자 | 기사입력 2022/12/01 [08:30]
11월28일 고(故) 김선도 목사 장례예배 엄수…기감. 국민훈장 무궁화장 서훈 청원

“내 관을 태극기와 교회기로 덮어 달라” 김선도 목사 유언

11월28일 고(故) 김선도 목사 장례예배 엄수…기감. 국민훈장 무궁화장 서훈 청원

문윤홍 대기자 | 입력 : 2022/12/01 [08:30]

1128일 고() 김선도 목사 장례예배 엄수기감. 국민훈장 무궁화장 서훈 청원

 

1125일 노환으로 소천한 고() 김선도 광림교회 원로목사의 유언 중 하나는 자신의 장례 방식과 관련된 것이었다. 김 목사는 자신의 관()을 태극기와 교회기로 덮어달라고 했다. 평생 마음을 다해 섬긴 광림교회와 대한민국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이어지길 원했던 것이다.

 

장천 김선도(杖泉 金宣燾) 목사의 장례예배가 열린 1128,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에서 열린 예배의 시작은 고인의 유언에 따라 관을 교회기와 태극기로 차례로 덮으며 시작됐다. 진행을 맡은 광림교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태극기와 교회기는 감독님이 목회하시는 기간 동안 감독님과 함께 강단을 지켰습니다. 감독님은 천국에서도 이 나라와 교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계실 겁니다.”

 

이날 오전 930분 시작된 예배는 시종일관 엄숙하고 침통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예배당을 가득 채운 성도 중에는 예배 내내 흐느끼는 이가 적지 않았다. 특히 김 목사가 병상에서 어눌한 말투로 부른 찬송 녹음 파일이 예배당에 재생될 땐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 광림교회 관계자들이 11월28일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에서 열린 '고(故) 김선도 감독 장례예배'에서 고인의 유언에 따라 태극기로 관을 덮고 있다.

 

1930년 평북 선천에서 출생한 김 목사는 한국 감리교를 대표하는 목회자였다. 625한국전쟁 때 월남해 감리교신학대를 나온 뒤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해 1971년 광림교회 제5대 담임목사에 부임해 이 교회를 국내 최대 감리교회로 성장시켰다. 한국교회의 강남 시대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감독회장을 지냈으며, 세계감리교협의회 회장과 한국월드비전 이사장도 역임했다.

 

장례예배에서 설교자로 나선 이철 기감 감독회장은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20:16~18)라는 제목의 말씀을 통해 “(김 목사는) 목회의 새로운 비전을 열어준 후배 목회자들의 모델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국 감리교회는 그에게 많은 빚을 졌다. 신앙이 얼마나 넓고 깊을 수 있는지 그는 보여줬다. 한국교회는 그를 놀라운 어른으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장례가 기독교대한감리회장으로 치러지면서 이날 예배에는 기감 소속 목회자들이 잇달아 연단에 올라 기도나 조사를 통해 고인의 삶을 추억하거나 그의 업적을 되새겼다. 전용재 전 기감 감독회장은 “(김 목사는) 한국교회를 넘어 대한민국을 빛낸 별이었다면서 그는 이 땅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지도자였다고 말했다. 입관예배는 종교교회 최이우 목사의 축도로 마무리됐다. 1125일부터 이어진 장례는 28일 오후 성도들이 장지인 경기도 광주 광림수도원으로 이동해 하관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김선도 감독은 오늘날의 웨슬리세계교회에 방향 제시고인 추모

생명을 건 기도, 하나님에 대한 절대 믿음

 

이날 예배 사회를 맡은 박동찬 목사(일산광림교회)감독님과 헤어질 시간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나, 우리와 함께 하신 수많은 순간들과 기억들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마음속에 살아 있을 것이라며 감독님께서 우리에게 나눠 주신 사랑이 우리의 마음 속에 남아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와 목회자로서 사는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교훈을 남겨 주고 가셨다. 우릴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감독님께서 그토록 사모하신 예수님을 만나 아픔도 눈물도 없는 하나님 나라에서 위로를 받으시고, 보좌 옆에서 영광 가운데 찬양을 부르실 것을 생각하니 감사하다고 전했다.

 

기도를 맡은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원로)우리 민족이 6.25전쟁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울부짖을 때, 이 나라와 한국교회에 김선도 감독님을 택하여 세우시고 수없는 죽음의 위기 속에서 생명을 거는 기도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감독님의 삶과 목회에 기적의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신실한 종을 찾기 어려운 때에 감독님의 빈 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한국교회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셨기에 눈을 감기 힘드셨을 것이라며 감독님께 사랑과 믿음의 도전을 받고 신실한 모습에 감동받은 수많은 목회자들의 생명을 건 기도와 믿음으로, 한국교회가 일어나고 시대를 일깨우고 영혼을 구원하는 종들이 계속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 고 김선도 목사의 입관예배가 11월26일 오전 11시 광림교회에서 열렸다. 서창원 목사가 설교를 전하고 있다. /사진= 광림교회 제공

 

죽음을 넘어선 십자가, 부활의 신앙 드러낸 분

 

설교는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와 한국조직신학회 회장을 역임한 서창원 목사가 전했다. 서 목사는 광림교회에서 전도사와 부목사로 섬기며 지근(至近)거리에서 고인과 깊은 친분을 맺었다.

서 목사는 “197123살의 신학생으로서 감독님을 처음 뵙고 전도사와 부목사로서 한없는 사랑과 지도를 받았다. 목회자가 될 수 없던 사람이 감독님의 관심과 배려로 목회자가 되어 함께할 수 있었던 생활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했다.

 

그는 감독님은 한국교회의 어른이자 세계 감리교회를 지도하시고 방향을 제시하신 세계 감리교회 회장이었을 뿐 아니라 교회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신 분이라며 영국 런던 웨슬리채플에는 감독님의 흉상이 있다. 미국에서 한국의 감리교회는 잘 알지 못해도 감독님과 광림교회는 안다. 감독님이야말로 오늘날의 웨슬리였다는 것이 저의 깨달음이라고 전했다.

 

그는 세계적인 목회자라는 것은 그저 표면적인 이해다. 존 웨슬리의 고향인 엡워스(Epworth)에서 교환목회를 하신 고인은 웨슬리가 형식과 규범에 물든 격동의 교회에 구원의 핵심을 가르쳤던 것처럼 한국교회를 세우고자 하셨다고 증거했다.

 

그는 김 감독님의 영적이고 신학적인 창의력, 창조적인 해석학적 힘은 한국교회사를 넘어 세계교회사 한 페이지를 새롭게 장식했고,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길 잃은 세계교회사에 방향을 제시하는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서 모든 이들에게 신학적 영감을 주었다. 그분의 위대한 가르침을 보고 헌신하고 봉사할 수 있던 것은, 저희에게 최고의 은혜라고 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죽음을 넘어선 십자가, 부활의 역설적 체험을 드러내신 분이다. 가난과 절망과 패배에 병들고 나약한 한국사회 속에 광림교회를 세우시고, 꿈꿀 수 없는 자들에게 꿈을 주시고, 절망을 넘어 희망을 넘어 생명과 능력을 선포하셨다. 내가 하는 것보다 너희는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격려하셨다고 했다.

 

그는 그분의 뜨거운 손길이 그립다. 해맑은 미소와 연민의 정과 눈빛으로 만져 주신 손길,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주시는 손길이었다. 그 감독님의 손을 만져 보지 않은 분이 이곳에 계신가라며 그 사랑의 흔적은 우리의 스승으로, 감리교의 지도자로 영원히 남아 계실 것이라고 전했다.

 

고인의 공로 인정, 2013년 영국 웨슬리채플에 흉상 설치

 

영국 런던 웨슬리채플은 2013년 고인이 세계 감리교 발전에 공헌한 바를 인정해 그의 흉상을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설치했다. 또 고인은 존 웨슬리의 대표 기념품인 데스마스크(Death mask)를 기증받았고 이는 광림 헤리티지& 비전홀에 전시돼 있다. 웨슬리의 데스마스크는 전 세계적으로 단 3개만 제작됐으며, 나머지 두 개는 영국 웨슬리채플 박물관과 미국 드류대학교에 있다.

 

복음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어김선도 목사가 남긴 것들

 

서울 중구 쌍림동에 있던 교회를 강남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성전을 지을 땅을 찾아다녔지만 번번이 허탕만 쳤다. 34번째로 찾은 땅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이었다. 197811. 당시만 하더라도 배나무밭이던 그 땅에 엎드려 김 목사는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이 땅을 거룩한 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지만 성도들은 교회를 옮기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성도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여러분, 저 들판에 세계에서 제일 크고 위대한 감리교회가 올라갈 것입니다. 보십시오. 수많은 사람이 몰려올 것입니다.”

 

이같은 호언장담은 결국 현실이 됐고, 그는 한국 감리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가 됐다. 이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은 고() 김선도 광림교회 원로목사다.

 

‘5분의 기적에서 시작된 신앙 여정

 

김 목사가 한국교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1126일 광림교회에서 열린 입관 예배에서 감리교신학대 교수를 지낸 서창원 목사가 전한 설교를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할 수 있다. 서 교수는 김 목사를 교회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신 분이라고 소개했다.

 

영국 런던 웨슬리채플에 김 목사님의 흉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한국의 감리교는 잘 알지 못하지만 김 목사님의 이름과 광림교회의 존재는 모두가 압니다. 김 목사님은 우리의 스승으로, 감리교의 지도자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 생전에 설교하고 있는 고(故) 김선도 광림교회 원로목사. /광림교회 제공

 

고인은 한국교회의 역사에 선명한 무늬를 남긴 목회자다. 김 목사가 생전에 인생의 기점이 됐다고 말하는 시기는 한국전쟁 때다.평북 선천에서 태어나 의학도의 길을 걷던 김 목사는 625 전쟁 당시 인민군에 군의관으로 끌려갔다. 그는 호시탐탐 월남할 기회를 노렸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퇴각하는 대열에서 이탈해 국군을 만나게 됐다. 포로가 될 줄 알았지만 국군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당신이 필요하오. 다친 군인이 많으니 도와주시오.”불과 5분 만에 기적처럼 이뤄진 신분의 전환이었다. 김 목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인생의 기점이 어디냐는 질문 앞에 나는 주저 없이 이야기한다. 북한군에서 국군으로 5분 만에 변화시킨 하나님을 체험한 그때 그 순간이라고. 그리고 그 기적을 이뤄낸 힘의 원천은 기도라고. 이 체험은 나의 일생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 김선도(오른쪽) 광림교회 원로목사가 젊은 시절 캐나다 야전병원에서 근무할 때의 사진. /광림교회 제공


고 김선도 목사는 군대를 네번 간 사람으로 알려졌다. 격랑의 현대사 때문이다. 평북 선천 출신으로 광복 후 신의주의전(醫專)과 해주의전에서 공부한 김 목사는 6.25전쟁 때 인민군 군의관으로 징집됐다. 인천상륙작전 후 퇴각하는 인민군 대열에서 탈출해 국군 군의관으로 참전했다가 전역했다. 이후 전쟁 중에 다시 유엔 종군 경찰병원 소속 의사로서 일했고, 목사가 된 후엔 공군 군목으로 입대해 9년간 근무했다. <202124守岩칼럼-‘목사 김선도의 구순 인생과 목회 역사를 담다 참조>

 

6.25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 김 목사는 감신대에 입학했고,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공군 군목으로 일했으며,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1971년 광림교회 제5대 담임목사에 부임했다.

당시 이 교회는 성도가 150명 정도에 불과한 중형 교회였다. 하지만 김 목사가 부임한 뒤부터 성도는 날이 갈수록 늘었다. 지금은 일반화된 총동원 주일을 만든 주인공도 김 목사다. 광림교회는 1978년 지금의 위치로 교회를 이전했다. 교회는 강남의 대표적인 대형교회로 성장했고, 현재는 등록 교인이 10만명에 달하는 한국 감리교회의 상징이 됐다.

 

기감, “국민훈장 무궁화장 서훈 청원

 

김 목사의 사역은 국내외를 넘나들었다. 1986년 광림복지재단을 설립해 사회복지사업에 뛰어들었고 해외 각국에 선교센터도 지었다. 문화선교를 위해 교회 옆 사회선교관에 공연장(BBCH)을 짓기도 했다.

 

교계 리더로서도 많은 역할을 감당했다. 기감 감독회장을 지냈으며, 세계감리교협의회 회장과 한국월드비전 이사장을 역임했다. 기감은 1125일 정부에 1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김 목사에게 줄 것을 청원했다. 기감은 “(김 목사는) 대한민국 발전과 국민정신 함양에 지대한 공로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무궁화장을 받은 목회자나 신학자로는 고() 조용기·강원룡 목사, () 이태영 박사 등이 있다.

 

김 목사는 자신을 포함해 4형제가 모두 목회자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 김홍도(금란교회) 목사와 김국도(임마누엘교회) 김건도(21세기교회) 목사가 그의 동생이다. 유족으로는 배우자인 박관순 사모와 장남인 김정석 광림교회 담임목사, 차남인 김정운 권사와 장녀 김정신 권사가 있다.

 

김정석 목사는 1127일 예배에서 담담한 어조로 하나님의 종으로 평생을 살았던 아버지를 추억했다. 그는 자신의 부친을 복음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하셨던 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감독님은 평생 복음에 빚진 자로 사셨다. 또 교회가 어떻게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셨다. 교회가 어떻게 매력적인 공동체로 세워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 거룩함으로 구별이 되는 삶을 사시려고 했다. 비전을 세우고 그것을 향해 항상 달려가셨다. 감독님은 꿈꾸는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꿈꾸는 삶이었다. 감독님에겐 인내와 의지와 결단력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세계 복음화에 헌신한 진정한 영웅해외 기독교 지도자들이 본 김선도 감독 

 

세계감리교협의회(WMC)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감리교회를 넘어 세계교회사에 큰 영향을 준 김선도 감독(광림교회 원로목사)의 소천 소식에, 국제 기독교 지도자들의 추모도 이어졌다.

레슬리 그리피스 영국 웨슬리채플 감독(영국 상원의원)은 추모 영상에서 그와 함께 했던 기억들을 존경하고, 세계적, 국가적, 민족적, 국내적 영역에서의 그의 업적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그는 웨슬리채플에 있는 그의 조각상은 작지만, 그가 이룬 것은 굉장히 크다. 무엇보다 그와의 개인적인 우정에 경의를 표한다. 그를 사랑했고, 그를 알게 됨으로 저의 삶은 풍성해졌다고 전했다.

 

앤드류 몰리 월드비전 총재는 김 감독님의 유산은 우리 마음과 그가 변화시킨 아이들의 마음 속에 살아 있을 것이라며 그는 세계 복음화와 세상을 선하게 바꾸는 일에 헌신한 진정한 영웅이자 챔피언이었다고 회고했다.

 

유명 작가인 리처드 포스터 목사(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철학과 교수)사랑하는 감독님이 이 생에서 더 큰 생으로 옮겨가셨다. 그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위대한 빛이셨다예수님에 대한 신실한 그의 삶에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저는 김 감독님을 알게 되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 왼쪽부터 레슬리 그리피스 영국 웨슬리채플 감독(영국 상원의원), 리처드 포스터 목사(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철학과 교수), 앤드류 몰리 월드비전 총재, 미네노 타츠히로 일본 요도바시교회 담임목사.

 

데이비드 맥앨리스터 윌슨 웨슬리신학교 총장은 그는 우리 학교의 가장 저명한 졸업생이었고, 전 세계 감리교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를 세웠다. 수백만 명이 그의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께 나아왔고, 수천 명의 목사가 그로 인해 선교사가 되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40년 동안 저와 제 전임자인 더글라스 루이스의 친구이자 멘토였다. 선하고 충성된 김 감독이 그리스도 안에서 편히 쉬길 바란다고 전했다.

 

미네노 타츠히로 일본 요도바시교회 담임목사는 감독님의 사역으로 전 세계에 수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요도바시에도 코마가네 광림국제선교센터가 세워졌다. 감독님의 영적 유산으로 지금도 그곳에서는 많은 영혼들이 양육되고 있다저도 천국에서 감독님께 더 좋은 보고를 드릴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했다.

 

에드워드 하가이 UMC 유라시아연회 감독은 김 감독님은 우리 유라시아 사역을 축복하시고 교회의 부흥을 여러 방면에서 도우신 귀한 분이라며 감독님의 선교와 복음에 대한 열정은 우리에게 큰 모범이 됐다. 우리가 스스로 느낀 그분의 삶과 사랑과 친절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스티븐 쿠퍼 웨슬리채플 담임목사는 영국에 있는 많은 감리교인들과 함께 전 세계 교회의 사역과 선교에 크게 그리스도를 증거하신 감독님의 소천에 애도를 표한다웨슬리채플과 광림교회의 협력관계를 깊고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와의 기억은 다음 세대를 위해 소중히 간직될 것이라고 전했다.

 

사무엘 폴 벤더 옥스퍼드선교대학원 학장은 옥스퍼드에서는 감독님과 가족들, 그리고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는 광림의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보낸다. 감독님의 삶에 감사를 표한다고 전해 왔다. 정회수 미국연합감리회 감독은 감독님의 삶과 목회, 선구적인 리더십을 깊이 존경한다세계를 교구로 삼은 요한 웨슬레의 후예로 감독님이 펴신 세계교회를 향한 열정과 거대한 하나님나라를 향한 아름다운 여정, 성스러운 선구자적인 헌신으로 기억하고 애도한다고 말했다.

 

애덤 해밀턴 미국 부활의교회 담임목사도 추모사를 보내왔다. 부활의교회에 설치된 대형 스테인드글래스에는 구약의 인물, 예수님과 신약의 인물, 사도들과 오늘날까지 대표하는 인물들이 새겨져 있으며, 2017년 설치 당시 살아 있는 인물로는 빌리 그래함 목사와 김선도 감독 단 두 명만이 포함됐다. 해밀턴 목사는 역사 속 인물들과 함께 감독님을 새긴 이유는 그분이 한국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셨기 때문이라며 부활교회를 방문했다가 떠나신 이후 보내주신 헌금으로 젊은이들이 성지순례를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많은 이들이 목회자가 됐다. 이는 그가 끼친 수많은 영향 중 일부다. 그와 함께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그밖에 세계감리교협의회 회장단 이반 아브라함스 감독, 영국 웨슬리채플 제니퍼 스미스 감리사. 미국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국 롤랜드 페르난데스 총무, 에스토니아감리교회 타비 홀맨 감리사, 미국 유명 저술가 데이비드 멕케나, 발틱 감리교회신학교 매리 앤 스미스, 애즈베리신학교 티모시 테넌트 총장 등이 서신을 보냈다.

 

하나님의 절대 섭리와 절대 주권에 내 모든 것을 맡기겠습니다.”

광림교회 고() 김선도 원로목사의 목회 55년의 기록 5분의 기적

 

나는 이 책을 우선 목회자가 읽기를 원한다. 세속화에 물들지 않고 경건을 지켜 내려고 하는 순수한 목회자, 동시에 교회를 성장시켜 세계에 제사장적인 대한민국을 이루겠다는 비전을 가진 목회자가 읽기를 바란다. 또한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 속도보다 삶의 옳은 방향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넘어지고 절망하는 사람이 읽기를 바란다. 이 책이 그런 사람에게 당신이 그 방향만 놓치지 않는다면 당신의 인생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라는 위로와 권면이 되기를 소망한다.

 

미래는 먼저 아는 자가 아니라 깊이 생각할 줄 아는 자의 것이다라고 말한 리처드 왓슨의 말처럼 이 책이 이 시대에 깊은 생각을 이끌어 내는 진지한 물음이 되기를 기도한다. -김선도 목사 자서전 5분의 기적(넥서스CROSS, 2013) 프롤로그 중에서

 

상처가 영광으로 바뀐 5분의 기적이 반석이 된 이 시대 최고의 영적 지도자 김선도 감독의 일대기

 

김선도 목사는 명실공히 한국의 광림교회를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김선도 목사는 1930년 평안북도 선천(宣川)의 한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난하지만 굳건하고 올곧은 신앙을 지켜온 부모님의 영향으로 일제와 공산당의 탄압과 핍박에도 자신의 믿음을 굳건히 지켜 왔다. 김선도 목사는 의학도의 길을 선택했으나 6·25 전쟁 중 생사를 가르는 5분의 기적을 통해 의학도의 길을 접고 목회의 길을 가기로 서원했다.

 

김선도 목사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동고동락하던 전우들이 총탄에 맞아 무기력하게 쓰러져 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를 깨닫고 목사가 되기로 서원한 이후, 아무리 큰 파도가 밀려와도 뜻을 굽히지 전심을 다해 기도하고 사역해 왔다. 김선도 목사는 매번 넘어야 할 산을 만났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간절하게 기도하며 모든 난관을 극복해 왔다. 전쟁 후 모두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진심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전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국내 최초로 유학을 다녀온 군목이 되었고, 세계적으로 가장 부흥한 감리교회를 이루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세계적으로도 그 지경을 점점 더 넓혀 가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이러한 김선도 목사의 사역에 대한 세밀한 부분을 만날 수 있다.

 

또한 김선도 목사가 사역을 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동역자와 조력자에 대한 이야기들도 볼 수 있다. 특히 영원한 인생의 동반자요 반려자이며, 김선도 목사의 사역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박관순 사모와의 만남에서 사역의 동반자로서 함께 동고동락해 온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바울처럼 세계를 누비는 주의 종이 되기를 기도한 김선도 목사 사역의 역사

 

김선도 목사는 초심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여일하게 절대 섭리에 대한 절대적 믿음, 그 믿음에서 나오는 긍정과 소망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 이웃을 향한 사랑을 평생 실천해 오고 있다. 이 책에는 무엇으로 세상을 감동시킬 것인가? 무엇으로 세상에 교회가 매력을 발산할 것인가? 끊임없이 교회와 목회자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 온 김선도 목사의 목회 철학과 교회성장학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이러한 고민은 내적으로는 성도들을 향해 영감이 있는 설교, 영감이 있는 음악, 영감이 있는 의식, 영감이 있는 안내라는 4대 원칙을 세우고 실천하게 되었으며, 외적으로는 교회가 성장을 담당하는 기관의 기업적 기능, 관리를 담당하는 기관의 군대적 기능,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의 학교적 기능, 치유를 담당하는 기관의 병원적 기능, 영성을 담당하는 기관의 수도원적 기능을 담당할 수 있도록 발전시켜 나아가는 머릿돌이 되었다.

 

김선도 목사의 목회에 대한 깊은 고민과 실천은 적극적 신앙’, ‘풍요한 창조’, ‘성실한 생활’, ‘사랑의 실천’, ‘일치된 순종이라는 광림교회의 5대 철학으로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이렇게 교회의 철학이 견고한 시스템화로 안착되고, 비전랜드, 세미나 하우스, 광림수도원, 사랑의 집과 같은 부설 기관이 세워졌다. 이러한 내외적 부흥은 국내를 넘어 러시아, 독일, 필리핀, 일본, 에스토니아, 터키, 아프리카, 뉴질랜드 등 전 세계 곳곳에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추천사

 

김선도 감독은 그의 삶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 후, 세계적으로 알려진 축복받은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나도 김선도 감독처럼 내 삶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지만, 이러한 과정들을 이해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독자들은 삶 속에서 상처가 영광으로 바뀌는 변화와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 책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그리고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가지고 추천합니다.-위르겐 몰트만(독일 튀빙겐 대학교 석좌교수)

 

김선도 감독은 세계 기독교계에 존재하는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명입니다. 지난 43년 동안 그의 효과적인 목회 아래서 광림교회는 세계에서 제일 큰 감리교회로 성장하였습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세계적으로 기독교인들을 가르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김선도 감독은 이러한 가르침 속에서 영적으로 훌륭한 귀감이 되는 지도자입니다. 그의 자서전 출간을 통해 우리는 김선도 감독의 삶이 어떻게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 속에 놓여 있는지를 배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리처드 포스터(영성 신학자, 작가)

 

김선도 감독은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김선도 감독을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구하셨고, 세계에서 제일 규모가 큰 감리교회 감독의 길로 이끄셨습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읽을 때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을 통하여 행하여진 하나님의 위대한 일하심의 이야기로 읽으시기를 당부합니다. 이 책을 통하여 독자들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목적들을 위하여 우리를 드높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티모시 테넌트(미국 애즈베리 신학대학 총장)

 

책 속으로

 

나는 청년 시절에 북한군에게 강제 징집당한 의학도였다. 공산주의 체제 안에서 나는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영혼의 질식을 느꼈다. 나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한군을 탈출했고, 정말 기적같이 5분 만에 북한군에서 국군으로 전환되는 은총을 체험했다. 그 은총의 5분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으며, 남은 인생의 5분을 살아갈 것이다.

 

그 영원한 5분을 체험한 이후, 나는 전쟁 속에서 죽음의 얼굴을 보았고 인간의 종말을 보았으며 내 존재의 나약함을 보았다. 죽음 앞에서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절규했고, 살려만 주시면 하나님께 일평생 헌신하겠다고 서원했다.

 

그때의 서원이 내 인생이 되었으며, 내 삶을 이끄는 목적이 되었다. 의학에서 신학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육신의 치료를 넘어 몸과 영혼, 인간의 모든 것을 치유하는 목사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p. 31)

 

신학생 시절에 학문과 경건성의 통일, 신학과 실천의 통일이라는 나의 고민을 풀어 준 열쇠는 전도 현장이었다. 전도 현장에서 복음의 능력을 보았고, 현실의 무게감에 진로를 저울질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렸고, 내 삶전체를 던질 만한 사명의 가치를 발견했다. 그 결과 졸업할 때 가장 영예로운 상인 전도상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전도상 부분이 추천되었는데 홍현설 학장님은 내게 그 영예의 상을 베풀어 주셨다. 그때부터 홍 학장님과 나와의 깊은 인연이 시작되었다. 홍 학장님과의 끊을 수 없는 만남을 잠깐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p. 117)

 

나는 군목을 하면서 젊은 청년들의 아름다운 변화를 뚜렷하게 목격했다. 그 건전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요인은 다름 아닌 관심위로였다. 따듯한 관심과 위로를 받을 때, 인간의 에고는 스스로 옷을 벗고 이기심을 가진 작은 자아에서 애국심과 신앙심을 가진 큰 자아로 커진다. 나라를 향한 사랑과 하나님 나라라는 더 큰 가치를 품는 자아로 확장되는 것이다.칼뱅은 교회를 어머니라고 했다. 군에서 지휘관이 아버지라면 군목은 어머니와 같다. 내가 지향한 관심위로의 군진 목회는 사병들에게 어머니의 포근한 품과 같은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했다. (p. 152)

 

나는 믿음을 적극(積極)으로 이해한다. 본래 성경에서의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눈에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믿음이다. 즉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도록 하는 것, 약속을 내 것으로 사유화하는 것이 믿음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이미 내 것으로 주어져 있다고 여기는 태도가 믿음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미 실현된 것처럼 사유화하는 태도가 믿음이요, 눈에 보이는 요단강이 갈라질 것이라는 보이지 않는 약속을 사실로 여기고 발을 집어넣는 것이 믿음이다.(p. 304)

수암(守岩) 문윤홍 大記者/칼럼니스트 ,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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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쓰지 않으면 시간도 죽고, 할 일도 죽고, 자기도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