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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岩 칼럼
백수 맞은 김형석 교수 “그래도 사랑할 시간이 남아있다”
김형석 인생과 신앙 ‘남아있는 시간을 위하여’,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펴내
기사입력: 2018/02/28 [08:01]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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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때에는 새 출발을 한다고 생각했소. 아흔 살을 넘기니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고) 오래 산다는 것도 참 힘든 일이라고 느꼈지요. 노인의 장수 역시 우리 사회가 다 같이 고민하고, 올바른 길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과 대면한 노(老)철학자의 진솔하고 담담한 문장이 수필 문학의 진경(眞境)을 보여준다. 2018년 한국 나이로 백수(白壽·아흔아홉 살)를 맞은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98)의 산문집 『남아있는 시간을 위하여』에 관한 얘기다.

또 기독교 신앙을 가진 김 교수는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라는 신앙과 인생 체험서도 거의 동시에 출간해 화제다. 더구나 백수에 책을 출간하는 것 역시 기록에 남을 만한 일이다. 김 교수는 “50여 년간 쓴 수필 중에서 독자들에게 의미를 줄 수 있는 글만 엄선해 담았다”며 “독자들이 인생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책에는 상실론, 인생론, 종교론, 책 속 수필선 등 4개 주제 아래에 수필 25편이 담겼다. 표제작은 새로 썼고, 나머지는 에세이스트로 널리 사랑받아온 저자가 『영원과 사랑의 대화』(1961년) 후에 쓴 글 가운데 골라 모았다. 

많은 후학(後學)을 길러내고 1960년대부터 『고독이라는 병』을 비롯해 기록적인 베스트셀러를 내며 삶의 지침을 전파했던 김 교수는 어느덧 스스로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깨닫는다. 어느 날 오후 그는 산책길에 서산 너머로 장엄하게 저무는 해를 바라봤다. ‘해가 지는 데 몇 분이 걸릴까. 내 나이도 저 태양과 같은 순간에 이르고 있는데 몇 해나 남아 있을까. 몇 해라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주어져 있을까. 그 시간 동안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지금도 언제나 어떻게 인간관계를 선하고 아름답게 이끌어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며 “그것이 도덕과 윤리의 기본이다. 모두가 무엇을 위해 살지 고민하고, 그것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함께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고독과 인연, 이별, 소유, 노쇠, 죽음 등에 관한 철학이 담긴 산문을 모아 『남아있는 시간을 위하여』 를 펴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 교수는 ‘또 하나의 나’와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고독에 관하여’). ‘나’는 친구가 죽었을 때, 전쟁이 일어났을 때, 사랑하던 사람이 운명했을 때 자신의 행동을 살피고 무언가를 묻고 싶어 하던 표정을 그대로 가지고 나타났다. 저자는 영원, 죽음, 무한, 허무, 운명 같은 주제를 두고 스스로와 대화한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그는 ‘신의 사랑의 음성’을 듣고자 귀를 기울였다. 장수하는 것은 사랑하는 이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일이기도 했다. 김 교수는 노모를 모시는 동시에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하는 아내의 병 수발을 하며 10여 년을 살았다. 그동안 ‘어깨에 쌀가마니 두 포대를 지고 가는 것같이 힘들었다’. 그러나 7년 사이 모친과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외로움과 서글픔이 온몸을 덮쳐왔다. ‘사랑을 주고받을 삶의 앞길이 없어진 것이다. 두 분의 사랑을 영원히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 그러나 내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생각이 한 가닥 피어올랐다. 이제부터 두 분에게서 받은 사랑을 더 많은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 나눠 주어야겠다.’김 교수는 고고한 현자(賢者)의 높이에서 내려다보지 않는다. 그 자신도 ‘백수를 맞이하는 오늘까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온 셈’이라고 고백한다. 그 열정은 인생의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간절해진다. 김 교수도 “나이가 들었기에 민족과 국가, 사회를 걱정하는 마음은 더욱 커져간다”고 말했다. 노화와 죽음이 주요한 화두(話頭)로 떠오른 오늘날 서가에 꽂아두고 곱씹으며 벗으로 삼을 만한 책이다. 마지막 부분은 이렇다. “그래도 나를 위한 시간들이 아직 남아 있다.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와 ‘힘드시지요?’라고 물으면 나는 ‘예,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할 것 같다.”  

1920년 평안북도에서 출생한 김 명예 교수는 일본 조치(上智)대를 졸업하고 1954년부터 31년간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봉직했다. 그는 『철학 개론『, 『철학 입문』, 『역사철학』 같은 철학서를 집필하기도 했지만,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 같은 에세이를 펴내기도 했다.

김 교수는 "수필이나 수상문을 쓰는 작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젊은 사람들 인생에 무엇인가 영원한 것을 안겨주고 싶었다"는 소박한 심정을 털어놨지만, 그의 글은 많은 사람에게 읽혔다.

이번에 간행된 『남아있는 시간을 위하여』는 2008년에 나온 『세월은 흘러서 그리움을 남기고』와 2012년 발간된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에 실린 글을 엮었다. 첫머리에 수록된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만 저자가 새롭게 쓴 수필이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가족과 친구를 잇달아 떠나보내며 겪은 헛헛함과 안타까움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저자는 정년퇴임한 뒤 소중한 사람들과 작별했던 과정을 설명하고는 "두 여인(어머니·부인)이 떠나 가정이 비었는데, 두 친구(안병욱·김태길)가 먼저 간 후에는 세상이 비어버린 것 같았다"고 적었다.

하지만 그는 백수(白壽)를 한 해 남겨두고도 "나를 위한 시간이 아직은 남아 있다"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고는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와 '힘드시지요?'라고 물으면 나는 '예,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할 것 같다"고 고백한다.   

김형석 교수의 신앙과 인생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교리는 기독교를 위해 있지만 진리는 인간을 위해 있어”
          

"교회는 우리끼리 즐기고 만족하는 신앙의 안식처가 아닙니다. 주님의 일꾼을 사회와 국가로 배출하는 사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가 교회를 위해 있지 않고 교회가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김형석 명예 교수는 얼마 전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라는 기독교 신앙과 인생 체험서를 펴냈다. 자신의 신앙생활과 체험을 주로 담아 2004년 펴낸 『나의 인생, 나의 신앙』을 토대로 한 이 책에서 김 교수는 우리 사회와 역사를 위해 기독교가 어떤 책임을 감당해야 할 것인지를 보충했다고 한다.

김형석 교수는 머리말에서 자신의 신앙적 과정을 3단계로 요약한다. 먼저 20세가 될 때까지는 교회가 '신앙의 모체'이자 '신앙생활의 가정'이었다.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교회라는 가정적 울타리를 벗어나 국민과 지성인으로서 신앙을 탐구했고, ‘예수의 가르침이 인생의 진리일 수 있는가’ 질문했다. 기독교 사상가와 저명한 신학자들의 정신을 통해 신앙을 굳혀갔고, 이는 교회가 요청하는 교리적 신앙과 더불어 진리로서의 복음을 터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세대를 떠나 30여년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교회와 현실 사회의 장벽과 거리가 아직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기독교는 기독교회를 위해 있지 않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음을 망각한 것에 대해 반성한다. 그는 "교회는 물론 대표적인 기독교 공동체이지만, 민족과 국가를 하나님 나라로 바꾸는 소금과 빛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이 주님의 권고이면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아들로 오신 예수와 더불어 선하고 아름다운 삶과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라며 "그런 마음 밭이 형성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건설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됐다. 하늘나라는 노력 없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사회와 교회가 교수님을 다시 불러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요.

" '예수'에 대한 책이야 서양에는 더 많고 우리나라도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천주교나 개신교에서 보는 예수와, 사회와 역사가들이 보는 예수는 거리가 멉니다. 저도 이쪽저쪽 책을 다 읽어봤습니다. 예수가 어떤 분인가 할 때, 성경에는 일반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 예수를 완전히 객관적 인물로 보는 사람들은 시각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제가 대학생이라 생각하고, 예수가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사복음서만을 기준으로 살펴봤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쓴 『예수』에는 예수님이 나사렛을 떠나가는 부분부터 나옵니다. 그 전 이야기는 일반 역사학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고, 천주교에서는 너무 심하게 교리화하는 부분이라 뺐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었으니, 현대인의 시각에서 '정말 예수가 어떤 분이신가'라는 안목으로 써 봤습니다.

『예수』에 대한 반응을 저도 생각해 봤는데, 대학생이나 일반인들이 볼 때 예수님께서 가졌던 마음과 문제의식이 이런 거였구나, 하는 공감대가 목사님들의 설교보다 이 책에서 더 와 닿으니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서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에서 '교리를 넘어 진리로'를 강조하는데, 교리란 무엇이고 진리란 무엇인지요?

"쉽게 보면 ‘왜 스님들이 쓴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많은데 목사님이 쓴 베스트셀러는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스님은 인생을 이야기하니 우리와 공통점이 있지만, 신부나 목사님들은 교리를 말하니까 그 사람들만의 것이지 우리와는 공통점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벽이 있습니다.

예수가 어떤 분이십니까? 진리와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지, 교리에 대해 이야기하신 분이 아닙니다. 교리주의자가 아니거든요. 제일 뚜렷한 것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과 계명도 모든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율법과 계명에 구속받는 게 아니지요. 율법과 계명이 신약에서 교리로 변했지요.

이 말은 교리란 인간 생활을 돕기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교리에 따라가기 위해 구속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천주교에서 모든 인간이 받아들여야 할 진리를 교리화시켰었지요. 종교개혁으로 그걸 바꿨습니다. 그런데 개신교에서 교리는 축소됐지만, 신학이 나와서 진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다 아시는 이야기이지만, 또 어떤 목사님들은 전혀 모르는 이야기이지요.

20세기 가장 대표적인 신학자 세 사람이 있습니다. 칼 바르트, 라인홀드 니버, 폴 틸리히입니다. 저는 1962년 미국에서 이 세 분을 모두 봤습니다. 니버는 '성경을 읽는 사람은 역사에 참여하게 돼 있다'고 했습니다. 틸리히는 성경을 읽은 사람인데 인간 사상의 근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니 저 같은 철학자가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바르트는 많이 읽을 필요가 없다고 봐요. 성경을 읽음으로써 교리는 극복되기 때문입니다.

진리란 무엇일까요? 교회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무신론자든 다른 종교를 믿든,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내 인생관으로, 가치관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이 진리입니다. 하지만 교리로 받아들이면 교인이 되어 교회를 따라갑니다. 진리는 인간 전체를 위해 있고, 교리는 기독교를 위해 있습니다. 더 좁아지면 율법으로 가겠지요.

교회에서 이런 이야기는 거의 못 들었을 것입니다. 불교도는 어떤 사람입니까? 석가모니 부처님의 교훈을 내 인생관과 가치관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최선, 최고의 인생인 사람입니다. 크리스천도 예수님의 말씀이 인생관이자 가치관이 되어야 하는데, 교리로 자꾸 묶어 놓으니 어려움이 많습니다.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삼위일체가 근본 교리입니다. 하지만 신학적으로 자꾸 따지면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동등일 수 있는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했으니 상하(上下)가 있을 텐데.' 칼빈도 이걸 갖고 싸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읽고 신앙을 가진 사람은 삼위일체 이야기 자체가 좀 어리석게 느껴집니다. 신앙을 가지고 살다 보면, 그런 것이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슈바이처 박사에게 '삼위일체를 믿느냐'고 물으니 '성경에서 그런 말씀 한 마디도 못 봤다'고 답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믿긴 믿지요. 그런 문제입니다.

또 하나, 연세대 재직 시절 매년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한 번은 감리교 한 감독님이 와서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도 어떻게 못 한다. 그러니 예수님도 가룟 유다는 어떻게 못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장로교 목사님이 와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정이다.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장로교와 감리교 이야기이지, 성경에는 그런 게 없거든요.             
▲ 김 교수는 “예수님 말씀이 내 인생관, 가치관이 돼야 하는데, 교리로 묶어 놓으니까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니 학생들이 제게 와서 어떤 게 옳으냐고 물어요. 그래서 뭐라고 했는가 하니, '나는 그런 문제 갖고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다'고 했지요. 왜냐하면 제가 신앙을 갖고 보니, 예정과 자유의 문제가 아니고, '은총의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느낀 건 그렇습니다. 거기에 자유도 예정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리와 진리 사이의 문제들도 그렇습니다.

하나를 추가한다면, 제 신앙의 은인이 목사님 두 분인데, 그 두 분 모두 우리 지성사회에서 인간적으로 성공하질 못했습니다. 한 분은 북한에 가서 김일성 정권 밑에서 일했으니 완전히 교회를 등진 것이었고, 다른 한 분은 기독교 대학 총장으로 있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배척당했습니다. 다 실패하셨지요.

그런데 제가 존경하는 두 분, 도산 안창호 선생님과 고당 조만식 장로님은 20대에 신앙생활을 시작해서 돌아가실 때까지 존경받는 크리스천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요? 두 목사님은 신앙을 교리로 받아들인 사람이고, 뒤의 두 분은 그 신앙이 신앙관, 가치관, 인생관이 된 분들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신앙을 진리로 받아들인 평신도들이, 교리에만 평생을 바친 성직자들보다 앞선 것이지요. 목사님들은 좋아하지 않을 이야기이지만, 그런 걸 어떡하겠습니까?"

김 교수는 책에서도 "윤리의 상황성은 교리의 본질성과는 괴리 관계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교리가 인도주의를 병들게 하거나 거부할 때는 기독교가 진리가 되지 못하며, 지성인들의 부정적 비판을 받게 된다"며 '바리새인적 신앙'을 철저히 경계하고 있다.

한편, 김형석 교수는 30여년간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했고, 지난 24년간 그 내용을 녹음해서 원하는 이들에게 우송하고 있다. 그는 만 100세가 되는 2020년까지 이러한 봉사를 계속하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성경공부를 인도하셨는데, 그렇다면 평신도들이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제가 출석하는 교회 교인들 가운데 '김형석 선생님이 다른 교회에 가면 많이 설교하시는데, 우리 교회에서는 왜 안 하시느냐'고 하십니다. 그런데 설교하면 교인들이 은혜로 받아들이지 않고 목사님이랑 자꾸 비교해요. 그걸 미리 알아서, 우리 교회에선 설교 안 합니다. 그래도 우리 모임에 나왔던 분들은 다들 열심히 교회 잘 섬깁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어느 교회가 세습했다고 하면, 제게 물어봅니다. 세습이 옳다 그르다는 것은 누구도 모르지만, 아버지가 '내 교회인데 아들에게 줘야지', 아들이 '우리 아버지가 키운 교회인데 내가 해야지' 한다면 그것은 세습입니다. 소유욕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저 같으면 싸우고 그러지 않고 그저 떠나겠습니다. 교인들 가운데 몇백 명쯤 떠나면, 목사가 '아, 옳지 않았구나' 알지 않겠습니까?

광우병 파동 때부터 저는 MBC를 보지 않습니다. 잘못했다고 이야기하면 보겠는데, 그것을 안 합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MBC가 방향을 바꿀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처럼 세습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잘 알고 있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작은 교회로 가는 세습을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세습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성경공부를 왜 합니까? 인생을 살아갈 교훈을 듣고 싶은 것입니다. 교육자는 교육할 때, 정치가는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고, 사회사업을 돈벌이로 삼아선 안 되고 하는.... 가장 인간다운 도리와 예수님 말씀을 일치시켜 주고 싶습니다. 인간답지 못한 사람은 신앙을 못 가지더라고요."    
 
“예수,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 위해 모든 것을 인류에게 주신 분”

"신앙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일이다. 주님을 대신해서 사랑을 베푸는 생활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의 공존성이다(49쪽)."

김형석 교수는 신앙의 의미를 이처럼 간명(簡明)하게 이야기한다. 저서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를 통해 김 교수는 철학적인 이야기도 적지 않게 풀어놓고 있다. 그는 "적지 않은 철학 책과 사상 서적을 읽으면서, 자연히 비(非)종교적이며 반(反)기독교적인 책들도 읽었다"며 "그러나 이상하게도 종교와 기독교를 비판, 거부하는 저서를 읽으면, 종교적 욕구를 더 강하게 느끼곤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쇼펜하우어나 니체 뒤에는 더 높은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고, 그것은 종교적 과제임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며 "그것들로 인간과 세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깊은 자아를 찾기 위해서는 반종교적이거나 비신앙적인 책을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책들이 내 신앙을 뒤흔들지 못했다. 종교는 철학적 과제라기보다는 인간과 삶에 관한 궁극적 관심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54쪽)"이다.

김 교수는 그런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家)의 형제들』 같은 책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와 신앙적 해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기독교 신앙을 위해 도움이 되었고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사상가로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파스칼, 키에르케고어 등을 꼽았다. 다음은 '인문학과 기독교'에 대한 인터뷰 내용이다.
                        
-기독교 안에서도 인문학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철학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를 문제시하는 신부나 목사님들의 수가 너무 적기 때문에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먼저 이야기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인들을 '이중인격'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아닌 줄 알았지만, 저도 알고 보니 그랬습니다. 교회에 설교하러 갈 때는 기도로 준비했지만, 일반 대학이나 사회에서 강연할 때는 준비만 잘 하려 했지 기도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20-30년 전쯤,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느끼게 됐습니다. 그만큼 신앙을,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교인들보다는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더 걱정하고 사랑하신 분 아니었습니까? 그러면 제가 설교하러 갈 때나 강연하러 갈 때나 다같이 기도로 준비해야지, 교회 갈 때는 기도하고 바깥에 갈 때는 기도 안 하는 것은 이중인격이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교회에 가서 설교도 많이 하는데, 제 아내가 아이들보고 '아버지 강연하고 설교하시는데 왜 안 가냐'고 말합니다. 애들이 들으러 왔습니다. 그 애들이 뭐라고 했겠어요? '아버지가 설교하실 때는 좋은 말씀 많이 하시는데, 같이 살아보면 그렇지 못하다'고 했지요. 목사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게 이중인격이지요. 목사님들이 그걸 생각 안 하시니, 점점 더 높은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의 잣대와 기독교의 잣대가 달라집니다.

더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역사, 세계사는 하나입니다. 세계사를 보는 사람은 기독교 역사도 포함해서 봅니다. 하지만 교회사를 연구하는 분들은 교회사만 따로 떼어서 봅니다. 그렇게 둘로 보니, 역사를 올바로 보지 못합니다.

영락교회에서 한때 대학생 성경공부반을 이끈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크리스천이 교만해지면 안 된다. 그 중 하나가 세상 역사를 보려면 밝은 눈으로 봐야 하는데, 종교라는 안경을 끼고, 거기에 기독교라는 안경을 끼고, 개신교라는 안경을 끼고, 장로교라는 안경을 끼고, 또 통합 측이라는 안경, 그리고 영락교회라는 안경까지 끼고 이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겠는가?'

더더욱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1961년 강화에 간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생들이 '선생님, 신앙 좋은 사람은 대학에 가지 말아야 합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보니, 미국에서 여론조사를 했는데 유치원 때는 모두 하나님을 믿지만 초등학교 때는 90%, 중고등학교 때는 70%로 이것이 떨어지고,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는 안 믿는 사람이 60%가 되니, '안 믿고 지옥가느니 믿고 대학 안 가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이중적입니다."  

-이러한 '이중인격'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요?

"아주 쉽습니다. 예수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는 절대 그리스도만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입니까? 예수는 인간 중의 인간입니다. 인간답지 못한 사람은 신앙을 못 가져요. 이해가 잘 안 가지요?

세상에서 봅시다. 원불교가 왜 생겼는지 아십니까? 교육받지 못한 사람이 불교 신앙을 가지니, 아이가 아프면 부처님에게 가서 '낫게 해 주십시오' 기도드립니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뜻은 '그건 내가 하는 게 아니니 병원으로 가서 좋은 의사에게 치료받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래 불교는 부처님한테 빌라고 합니다. 그래서 (원불교가) 생겼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교육을 못 받은 사람에게는 신앙이 미신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 예수를 모르니 그리스도도 모르는 것입니다. 목사는 됐을지 몰라요. 신학자는 공부하면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인간 예수를 모르면 신앙을 가지기 힘듭니다.

제 천주교인 친구가 프랑스에 기독교 연구하러 갔다가 불교도가 됐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예수님 마음이 석가님 마음보다 너무 좁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석가님은 인간들에 대해, 사회와 역사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 사는 그곳에서 책임을 느꼈다.' 그래서 예수는 헤롯왕을 욕하지 않고 악을 저주했습니다. 우리도 지금 핵문제를 이야기하는데, 핵무기를 만드는 죄악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앞서 라인홀드 니버 이야기를 했는데, 니버는 하버드대 강의에서 '너희 선조들이 자본주의를 통해 부자가 됐는데, 그걸 갖고 즐겁게 살자고 하면 아메리카에는 미래가 없다. 세계 가난한 나라에 자꾸 줘야 한다. 가난한 나라들이 잘 살게 되면 아메리카는 저절로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니버를 좋아합니다. 예수님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국가도 소유욕에 빠져선 안 됩니다.

소유욕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저는 친구들 중에 신부도, 스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목사님이 결혼하면 안 된다는 의견에는 반대합니다. 그렇지만 하나 목사님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스님들은 스님이 될 때 인간적인 욕심을 버립니다. 세상 떠날 때 스님들이 가져가는 게 없습니다. 그것이 출가(出家) 아닙니까? 신부들도 간혹 실수하는 건 있지만, 신부가 될 때는 가정이나 소유욕을 버립니다.

요즘 교회에서 세습을 이야기하는데, 신부들은 상상도 못하는 일입니다. 우리도 그건 있어야 합니다. 결혼도 좋고 다 좋지만, 최소한 목사가 되려면 명예나 권력, 소유의 노예가 돼선 안 됩니다. 거기에 빠진 사람이 가르친다는 건 말도 안 되지요. 적어도 내 소유가 내 인생이라는 인생관을 가진 한, 목사가 돼선 안 됩니다.

우리 교회가 커진다고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교인이 많아졌다고 좋아지는 게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좋은 점보다 걱정스러운 점이 더 많습니다. 6·25 한국전쟁 때부터 사회는 위로 올라가는데 교회는 그 자리에 있습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교회가 사회보다 높으면 예수님의 뜻이 사회로 흘러 내려가는데, 그 반대라면 예수 믿는 분들도 사회에서 배워야 합니다."

김형석 교수는 “학문이나 철학보다도 종교 특히, 기독교의 정신은 동서양을 구별하지 않는 과제와 영역을 개척해 줄 것이라는 희망적인 길을 열어준 것 같았다”며 “종교 특히, 기독교는 서양이나 동양의 종교가 아니다. 인간의 신앙이며 인류의 종교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학문은 좁은 영역에서, 그러나 신앙은 넓은 세계에서’라는 사고(思考)에 나도 모르게 근접했던 것 같다”고 저서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에서 밝혔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세계관으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몇 해 전 한 목사가 쓴 칼럼을 봤습니다. 미국 볼티모어의 한 목사님이 캘리포니아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데,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지금 워싱턴 D.C.를 지나고 있으니 창밖을 보십시오. 국회의사당, 백악관, 펜타곤 등이 있습니다.' 볼티모어에 다 왔을 때 다시 내다보니 대학도 있고 병원도 있고 백화점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도드렸다고 합니다. '저는 이제까지 비행기 타고 내려다 봐도 보일 정도의 큰 교회를 생각했는데, 얼마나 주님 뜻과 어긋난 것인지 알았습니다. 교회는 보이지 않게 작아야 하고, 교인들을 국회의원이 되고 백악관, 국방부에서 일할 일꾼으로 만들어 보내기 위해 존재해야지 교회가 커지게 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그걸 모릅니다. 천주교가 그걸 거꾸로 해서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천주교는 예수님 말씀과 성경에 교리와 전통을 더하고, 교회법까지 만들었습니다. 기독교 정신과 맞지 않았지요. 그런데 인문학, 철학과 문학과 역사학이 나와서 '그게 아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몰아낸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교리화한 구약과 신약을 인문학이 몰아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찾아주는 것입니다. '교회가 잘못됐기 때문에 몰려나간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잘못됐다 잘됐다는 차원보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답하겠습니다.

둘째, 프랑스 혁명입니다. 그 당시 풍자만화를 보면, 바짝 마른 농민이 지게를 지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피둥피둥하게 살찐 세 사람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왕족, 귀족, 신부였습니다. 밑에 이렇게 써 있지요. '이 가난한 농민이 견딜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꺼내놓은 것이 자유·평등·박애입니다.

기독교 정신이 무엇입니까? 자유·평등·박애입니다. 이것 없는 기독교는 필요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 못하는 기독교는 버림받아야지요. 이것을 버린 것이 천주교였습니다. 그걸 밀어낸 것이 인문학이었지요.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위해 모든 걸 인류에게 주신 분입니다. 그러면 프랑스 혁명과 다른 게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인간을 사랑하고 이성과 자유의 가치를 최고로 여깁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인간의 자유와 가치로는 개인의 구원도 없고 역사도 불행해지니, 하나님 뜻을 받아들여 인간의 가치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문학보다 더 높은 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이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신부님 2명이 천주교를 전파하다 붙잡혀 사형 집행을 당하게 생겼습니다. 일본 관리가 '여기 있는 예수님과 마리아 성상을 네 발로 밟으면, 저기 물에 빠진 두 사람을 건져주겠다'고 합니다. 신부가 성상을 보면서 '주님, 저 두 사람을 버릴까요, 성상을 밟을까요'라고 하니, 성상에서 예수님의 음성이 '밟으라'고 합니다.

밟으면 그는 신부 직위에서 떨어집니다. 천주교에서는 신부가 떨어지면 파문에 해당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예수님의 뜻입니다. 그게 휴머니즘이지요. 하지만 신학자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목사님들은 '신본주의냐, 인본주의냐?'고 묻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말을 못하지요. 그건 목사님들이 만든 말이지, 세상에 그런 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인데, '하나님 없는 인간, 인간 없는 하나님'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바울이 기독교 신앙을 가장 정확히 말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 인간다움입니다. 인간답지 못한 인간은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미안하지만, 히틀러는 하나님 자녀가 못 됩니다."

-말씀대로 교회에서 듣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크게 성공한 한 목사님이 어떤 신문에서 교회 성장 비결을 물으니 '살아서는 전도하고 죽어서는 천당가고, 이 둘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걱정하지요(웃음).

요즘 선교사들을 많이 보내는데, 예수님 말씀에서 교리를 강요하기보다 봉사하고 교육을 해 주고 병원을 지으며, 그것이 예수님의 뜻이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전도를 봉사라고 생각해야지, '너희들은 안 믿으니까' 위에서 베푸는 것처럼 해선 안 됩니다.

이건 세상 이야기인데,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가장 신앙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요. 우리나라에 왔다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마지막 말로 '예수 믿어야 합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박 대통령이 '갓뎀(God damn)'이라고 했답니다(웃음).

카터가 무슨 실수를 했는가? 신앙은 소중한 선택입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부족하다 해도, 권고하듯 하는 건 인격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그걸 보고 신앙이 좋다고 하는 것은 너무 교회적이 아닌가 합니다.

간음한 여인 이야기 같은 것이 왜 소중합니까? 인간의 공감대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휴머니티(humanity)를 알아야 합니다. 공감대 없이 자꾸 이야기하면 실패합니다.

유명한 목사님이 한인교회 목회 시절, 고교생 딸이 마리화나 피우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시절 미국에선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다 그럽니다. 그런데 이 완고한 목사님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너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책망했습니다. 이 아이가 자살해 버렸습니다. '친구들이랑 다니다 그랬구나. 그거 좋은 게 아니야. 한국엔 없고 여기에나 있는 거다' 그 정도면 되는데, '너 크게 죄 지었다'고 하니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요. 딸을 자살하게 만들었으니 잘못한 것입니다."

김형석 교수는 저서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에서 “예수는 구약의 계명과 율법을 인간적 생명의 진리로 승화시켰다. 그래서 기독교가 탄생된 것”이라며 “이제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가 인간성과 삶의 진리를 구속하는 교리와 교리주의를 탈피하지 못한다면,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런 고생 없이 평안히 살았다면 신앙이 뭔지 모를 것”    

김형석 교수는 1920년 평북 대동에서 출생, 일제강점기를 온몸으로 겪어냈고 해방 후 공산주의의 해악(害惡)을 처절히 경험한 후 신앙과 자유를 위해 월남했다. 6·25 한국전쟁으로 부산까지 피난을 떠나야 했고, 전란(戰亂) 전후 있었던 교단 분열도 목격했다. 4·19 혁명 때는 학생들과 거리로 나갔다. 1960년대에는 미국에 가서 당대 최고 신학자였던 라인홀드 니버와 폴 틸리히, 칼 바르트의 강연을 모두 듣기도 했다.

그 시대 속에는 신사참배 문제도, 종교의 자유 문제도 들어 있었다. 최근 인촌(仁村) 김성수(1899-1955)에 대해 친일행위가 인정된다며 56년 만에 건국훈장이 박탈됐는데, 직접 당대의 인촌을 목격한 그는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도 나는 인촌을 존경한다. 그는 나에게 두 가지 잊을 수 없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것은 바로 애국심과 지혜로움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동안 국내에 있었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큰 나무는 바람을 피할 수 없듯이 시련을 면치 못했다. 그 때문에 일부에서는 친일 인사 중의 하나라는 말도 하고 있으나, 나는 그런 사고와 판단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만큼 민족과 국가를 위해 많은 일을 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동아일보, 고려대학교, 중앙학교, 최초로 기계천인 태극호를 낸 경성방직 등 그가 남긴 일을 모두가 애국지성에서 우러나온 것이다(90쪽)."

"도산(島山·안창호)이 병중에 있을 때, 인촌은 일제의 감시 밑에서도 도움을 주곤 했었다. 그 지혜로움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를 따르며 존경했고, 누구보다도 측근들의 협력을 받으면서 살았다. 나는 대인관계에서 그렇게 지혜로운 사람을 별로 대해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지혜로움은 상대방을 진실로 아끼고 위해 주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91-92쪽)."

김 교수와의 인터뷰 마지막 부분은 친일과 신사참배, 그리고 무교회주의와 가나안 성도 등에 대한 것이다.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에서 신사참배를 고백하셨는데, 오늘날 '친일(親日)'을 기계적으로 구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중학교 때 그 문제로 고민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 뿌리는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의 처음 세 개는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네 번째는 안식일에 대해서입니다. 당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제외하면, 모두 자연 신(神)을 믿는 종교였습니다. 철학도 자연의 질서에 따른 것이였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에서 시작돼 모세에게 연결되는 기독교 신앙은 자연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이 아니라 정신적인·영적인 신앙이었지요. 그래서 우상 개념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우상이 무엇입니까? 신사참배를 한다 안 한다, 그게 아니라 '인생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로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바로 갖고 살면 우상이 없는 사람이고, 바로 못 갖고 살면 다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이지요. '돈이 최고'라는 사람은 신사참배라기보다 현대의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그리스도의 교훈을 최고로 모시는 사람은 우상숭배자가 아니지만, 그보다 명예를 높이 보거나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우상숭배자입니다. 목사님들이 학위논문을 표절했다? 우상숭배자입니다. 모두가 아는 큰 교회 원로목사가 부목사를 때렸다? 크리스천에게 폭력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왜 세상 사람들에게 배워야 합니까? 제게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이것입니다. '간디 선생을 존경하시는데, 간디도 구원받았나요?' 천당 갔다 지옥 갔다는 인간이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 저는 모르고, 다만 간디는 살아있는 동안 기독교 정신에 가장 가까웠던 분입니다. 그 분이 거짓 없는 사회, 폭력이 없고 사랑으로 사는 사회를 평생 살았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뜻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지 말고 하나님 뜻대로 살라'는 것이 답답해서 하신 말씀 아니겠습니까? 구원받았는가 하는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 우리가 말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김형석 교수는 책에서 인생의 위기 순간마다 꿈을 통해 받은 계시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어려움을 느끼던 것에 대한 영적 암시 또는 교훈으로, 이런 일은 일생에서 몇 차례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면 호기심에 빠지게 된다. 이건 자랑할 것도, 간증할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무교회주의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6·25 전쟁 때 부산 피난 가서 교회를 하나 설립했습니다. 목사는 아니지만 작은 공동체를 세워서 교회가 됐는데, 두 가지를 느낍니다. 하나는 박태선 장로의 신앙촌 운동이 당시 그 동네를 휩쓸었는데, 상경(上京) 후에 우리 교회는 어찌 됐나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신앙촌 운동에 취직한 여집사 한 사람 빼고는 아무도 가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분들에게 도움을 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일교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진리가 얼마나 귀한지 느끼게 해 줬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설교가 더 빈약한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설교가 예수님보다 더 당당합니다. 불교방송을 보면, 스님들은 떠들고 야단하지 않습니다. 그냥 대담을 합니다. 천주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목사님들은 대단합니다. 큰 교회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설교인가 하는 부분에선 의심이 갑니다.

저도 예전에는 설교를 많이 했고, 강연하러 갔을 때 '참 잘 한다'고 하면 우쭐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끝나는 것입니다. 다음에 청하지 않습니다. 대형교회를 목적으로 삼으면, 천주교처럼 버림받는 때가 올 수 있습니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입니다.

일부 목사님들이 제게 무교회주의라고 하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무교회라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라고 하니 그렇지, 기독교 공동체 아닙니까. 기독교는 공동체가 돼야 하고, 그 공동체의 대표가 교회입니다. 병원도, 학교도, 직장 모임도, 가정도 기독교 공동체입니다.

일본은 좀 이상한 것이 무교회주의자들은 그룹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교회 형식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성경에 대한 이해는 우리보다 높습니다. 교회에서 보면 퀘이커교도들도 무교회주의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성경주의자들입니다.

성경주의자라서 잘못 되는 건 없지만, 교회주의에 빠지면 교회가 잘못 됩니다. 교회주의라는 말은 없지만, 기독교가 교회에서 성장해서 교회만을 위해 끝나면 교회주의 아니겠습니까. 천주교가 그랬습니다. 성경 읽어봐도 예수님께서 '좋은 교회, 훌륭한 교회 만들어라'고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대신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교회에 가 보면 교회 이야기뿐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뜻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성도'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말합니다. 교회가 기독교 정신을 잃어버렸다면, 교회 안 나가야 한다고요. 그들도 크리스천입니다. 교회 안 나간다고 크리스천이 아닌 게 아니고, 교인이 아닌 것입니다. 교인은 아니지만 크리스천입니다. 제 친구들 중 그런 사람들 많은데, 점점 많아질 것입니다. 교회가 수준이 낮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사상가들의 책을 읽어본 사람이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 어떻겠습니까? 소박하고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대학 나오고 지성인이 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민주주의가 뭔지 가르치는 목사가 없습니다. 시장경제의 장점과 공산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경제관이 어떤 차이가 있고 무엇이 기독교적인지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독일 메르켈 수상 같은 분이 기독교 정치가입니다. 50~70년 전에 그 분 같은 정치가가 영국과 독일, 미국에 있었다면, 원자폭탄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지 워싱턴이 어느 목사보다도 크리스천답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기독교 정신을 갖고 있는지를 보지 않고,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가만 보고 평가합니다.

일본의 무교회주의자들의 신앙은 굉장히 보수적입니다. 그들은 신학을 공부하지 않습니다. 신학이 신앙을 위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저도 교회에 등록이 돼 있으니, 출석을 못 하면 주보를 보내줍니다. '성도'라고 써 줍니다. 거룩한 무리, 성도(聖徒)가 쉬운 게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은 성도이고 그 위에 집사, 장로가 있습니다(웃음). 저는 그저 신도(信徒)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베드로를 성도로 보는데, 교황도 성도입니다. 제 말은 교회를 걱정하는 것입니다."

-이 책에선 100년의 인생을 풀어놓으셨는데, 가장 기뻤던 시기와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는지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평안히 살았다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과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가장 어려운 역사의 고비를 넘기고 개인 생활에서 어려운 고비를 넘긴 사람이 깊은 신앙을 갖습니다.

중세가 기독교 사회였지만, 거기서부터 흘러나온 두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악마도 유혹하지 못하고, 하나님도 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을 하나님이 버리면, 그 누가 선택을 받겠습니까?

또 하나의 교훈은 '악마는 우리는 유혹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겪는 만큼 어려움을 겪었지만, 다른 점은 시련을 겪음으로써 하나님의 은총을 더 많이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 쓰는 말이 이것입니다. '인생이 무엇인가? 사랑을 실천하는 고생이다.'

예수님의 뜻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고생을 하면 십자가를 함께 지는 것 같겠지만, 고생을 멀리해선 안 됩니다. 극복해야지요. 은총의 시련입니다. 그때는 힘들지만, 겪었기 때문에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된 것이지요. 아무 고생 없이 평안히 살았다는 사람은 신앙이 뭔지 모릅니다.

지금도 교회 가 보면 십일조를 강요하는데, 교회를 좀 섬겨보니 헌금을 요구할 순 없는 것 같습니다. 헌금이다, 십일조다, 다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1억 주시면서 '네가 맡아서 써' 하시면 예수님 대신 쓰는 것이지요. 미안하지만 그 귀한 돈을 건축헌금에는 안쓸 것 같습니다. 구제헌금에는 쓰겠지요. 그게 십일조에 대한 제 판단입니다. 신약에는 십일조를 권하는 근거가 없습니다."

김형석 교수는 꿈 이야기에 이어 기적에 대해서도 “신앙에서 기적을 느낀 사람들은 밖에 나와 이야기하지 않는다. 기적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떠들 뿐”이라며 “우리는 기적으로 사는 것이다. 자연법칙에는 기적이 없다. 대신 우리 정신생활에 은총이라는 것이 있다. 그걸 기적이라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교회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말한 이야기들이 다 그런 것들이지요. 하나 빠진 것을 이야기하자면, 일본이나 캐나다에 가면 천주교, 성공회와 구세군, 동방정교회는 따로 있는데, 그밖에 장로교와 성결교, 감리교 등은 하나입니다. 그저 '일본 기독교, 캐나다 기독교'입니다. 제도적으로 하나라기보다,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캐나다에서는 기도원 같은 곳을 교단에서 갖고 있으면 각 교회들이 다 이용하지, 이 교회 저 교회가 따로 하지 않습니다.

요즘 작은교회가 만들어진 후 생활비가 없다고 걱정하는 일이 가장 많습니다. 그러나 그건 다 교단에서 책임져 줘야 합니다. 적어도 사회에 모범은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끼리 싸우고 있으니, 사회가 걱정합니다. 이 두 가지 운동을 해야 합니다."   

-끝으로 개인적인 비전이 있으시다면

"신앙인들에게 개인적인 비전을 물으면 '글쎄요' 라고 합니다. 하지만 신앙인이란 항상 비전을 세우고 사는 존재입니다. 항상 주님께서 부탁하시는 일이 있고 주님의 뜻을 위해 할 일이 있으니,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어제도 후배 교수들과 모임을 갖다가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토론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한국병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이를 어떤 가치관으로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문제이고, 이런 것이 비전입니다. 신앙인들은 다 그렇게 살게 돼 있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 교회 큰 교회 만들겠다' 이런 것보다는 우리 교인들이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이런 것 말입니다."
<문윤홍·시사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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