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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블러-로스의 DABDA모델

정영부 | 기사입력 2023/11/03 [08:49]

퀴블러-로스의 DABDA모델

정영부 | 입력 : 2023/11/03 [08:49]

 

▲ 150회에 걸쳐 연재 중인 「영혼학 그 표준이론」이 ‘지식과감성 출판사’에서 최근 출판되었습니다. 독자 제위의 관심을 기대합니다.  © CRS NEWS

 

이번 150회에는 영혼학 그 표준이론의 제12장 내용 중 삶 속의 죽음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를 계속한다.

 

 

퀴블러-로스의 DABDA모델

 

이와 같은 방어기제들은 건강하게 살 때에는 제법 효과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상 죽음에 닥치면 퀴블러-로스의 분노의 5단계를 거친다. 즉 죽음 앞에 서면 누구나 부정(Denial), 분노(Anger), 타협(Bargaining), 우울(Depression)의 단계를 거쳐 마지막에는 어쩔 수 없이 결국 죽음을 수용(Acceptance)하고 죽게 된다는 것이다.1)

참으로 구차하고 서러운 이야기지만 퀴블러-로스의 제창(提唱) 이후 수없이 검증된 이론이다. 예외 없는 법칙 없다고 나는 절대 그러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난다 긴다 하는 전배들도 다들 그러다 죽었다 하니 나라고 예외를 둘 일은 일단 아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분명 있으리라. 특히 위에 거론한 방어기제들의 종류에 따라 큰 차이가 나타난다. 종교나 윤회사상, 직관, 은총 등을 통해 사후에 대한 신념을 쌓아 온 사람은 전() 4단계를 쉽게 지나 죽음을 기꺼이 수용할 것이고 염세나 허무주의, 동조의식, 이승집착 특히 과학교 그것도 남의 과학교를 방어기제로 삼고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거나 심지어 마지막 수용(Acceptance)단계를 밟지 못하고 죽게 된다.

원불교 대종경(大宗經)에 이르길 나이가 사십이 넘으면 죽어 가는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하여야 죽어 갈 때에 바쁜 걸음을 치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有終라는 말도 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뭇 사상에서 이구동성하기를 사람은 죽을 때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며 잘 죽는 사람이라야 잘 나서 잘 살 수 있다고 하니 DABDA를 흠잡기 전에 이를 거울삼아 자신의 죽음에 대비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나이와 죽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나이가 들면서 감소한다는 보고가 있다.2)이는 상식과는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에서 실시된 연구에 따르면 이것이 팩트라고 한다. 이는 한국에서도 통하는 이야기다.3)그런데 왜 노인이 될수록 오히려 죽음이 두렵지 않을까?

 

1) 주변을 보라. 늙을수록 이기심과 자존심이 커져서 온갖 노욕과 추태를 부리는 사례가 허다하다. 삶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려는 사람은 오히려 찾기 힘들다.4)

2)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자 환경적응의 달인이다. 오래 살수록 삶은 당연한 것이 되고 죽음은 죽은 이후에 대응하려 한다.

3)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죽음 자체가 두려워서라기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남아있는 삶의 시간이 아까워서이다. 젊어서는 남은 세월이 많아 더 죽음이 두렵다.

4) 체력이 떨어지고 건강이 나빠지면 사람은 더욱 몸에 구속되어 하위정신체인 이드가 세력을 얻는다. 자아의 수준이 낮아지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독() 짓는 늙은이가 된다.

5) 나이 먹으면 주위 사람이 한두 사람씩 죽어 나가면서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고 몸에 여기저기 병이 생기고 아파 오면서 죽음의 가능성이 점점 커지니5)로스의 DABDA이론에 의하여 否認(Denial)이 발동한 것이다.

6) 하늘의 섭리 때문이다. 즉 나이 들어 죽음이 두려워지고 하늘이 무서워지면 다들 영성생활에 열심을 낼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두 회개(悔改)하고 착하게 살아 천국에 갈 것이다. 그러나 섭리는 그 반대다. 하늘은 사람이 나이 들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줄인다. 이러한 섭리를 간파하고 그럴수록 하늘을 두려워하고 조신(操身)하는 사람들만 금의환향의 영광을 얻는다.

 

나이가 들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하는 바람직한 이유 하나가 있다. 수양이 깊어져서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지로는 그런 사람을 찾기 힘들다. 나이 들면 수양이 깊어지기는커녕 위의 여러 가지 이유로 그동안 쌓은 덕마저 까먹고 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Hodie mihi, cras tibi

 

일본 사무라이들의 윤리교본인 하가쿠레(葉隠)에 이르기를 사무라이라면 마땅히 매일 아침 일어나면 죽음을 연습하여야 한다. 죽음이 오늘 이곳에 있을지, 아니면 저곳에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가장 멋지게 죽는 방법은 무엇일지를 미리 상상하며 오늘의 죽음을 대비하여야 한다.” 오늘 이 아침이 마지막 아침일 수 있다는 다짐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들은 또 벚꽃놀이(하나미, 花見)와 단풍놀이(모미지가리, 紅葉狩)에서 모든 것의 가장 찬란한 시기는 그것이 스러지기 직전이라는 철학을 배운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6)오늘 이 좋은 날이 죽기에는 가장 멋진 날이라는 것이다.

 

로마의 어느 공동묘지 입구에는 호디에 미히 크라스 티비(Hodie mihi, cras tibi)’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뜻이다. 오늘은 내가 관()이 되어 들어왔지만, 내일은 네가 들어올 것이라는 말이다.7)

 

사람다움 중 가장 고귀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죽음을 그 무엇보다 두려워하면서도 이를 극복하고 기꺼이 맞이하는 자세. 그것이 용기의 발로이든 지혜로 인한 것이든 깨달음의 결과이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다. 삶의 목표가 이 능력을 얻기 위함이라고 한다면 틀린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죽음과 관련하여 각 나이에 맞는 태도를 정의해 보면 어떨까?8)

 

▲ 정신과 의사로 전세계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자 임종연구의 권위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1926~2004)는 죽음을 앞두고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5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註釋> 

1) 분노의 5단계(five stages of grief) 이론은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가 거론한 죽음과 관련된 임종 연구(near-death studies) 분야의 이론이며 죽음과 무관히 분노의 이론으로도 널리 회자된다. 퀴블러-로스 모델(Kübler-Ross model), 또는 머리글자를 따서 DABDA모델이라고도 한다. 물론 예외없는 법칙이 없다고 해당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학자들 중에는 퀴블러-로스의 DABDA이론을 무시하거나 폄훼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오히려 그의 이론을 겸허히 받아들여 장차 죽음을 마주하였을 때 부정(Denial), 분노(Anger), 타협(Bargaining), 우울(Depression)의 네 단계는 바로 극복하거나 뛰어넘고 수용(Acceptance)의 단계로 직행하는 것을 삶의 지향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로스의 DABDA모델의 참된 의미를 알아본 각자(覺者)들의 태도라 하겠다.

 

2) 1. 옥스버드 대학 Cognition and Culture LabResearch Co-ordinator인 조나단 종(Jonathan Jong)의 보고서이다.

2. 한 연구에 따르면 40대와 50대는 60대와 70대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60대는 중년(35~50)과 젊은 성인(18~25)보다 죽음에 대한 불안이 덜하다고 보고했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참가자의 죽음 불안은 20대에 정점을 찍은 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theconversation.com/five-surprising-findings-about-death-and-dying-51923 참조)

 

3) 국내 영혼학 권위자인 최준식 교수는 요양원에서 죽음학 강의는 의외로 인기가 없다고 한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더욱 외면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죽음에 대한 조기교육을 역설한다(최준식, 죽음학 개론, 93쪽 참조).

 

4) 老慾

 

늙은이에게

 

늙은이여 그대는

점잖은 척하지 마라

늙은 몸은 있어도 늙은 마음은 없다는 거 스스로

잘 알잖아?

 

늙은이여 그대는 원래

비겁하고 소심하고 얄팍했어

게다가 이제는 기억력도 줄고 정열마저 없잖아?

그러니 불쌍한 그 허세는 이제

그만두는 게 좋겠어

 

이것 봐 늙은이

손에 쥔 그 금덩이가 위안이 좀 되나?

그 정도면

내일이라도 죽어 북망산천 찾아갈 때

가마 탈 수 있겠어? 벤츠 탈 수 있겠어?

 

이것 봐 늙은이

고생한 만큼 베풀고 번 만큼 쓰고 뺏은 만큼 돌려줘

이제 폐업 정리해야 할 때야

침묵하고 겸손해질 때란 말이야

 

5) 나이와 죽음

 

건강검진

 

行星에서는 이미 충분히 살았다

이 별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이제 신물이 났다

더 이상 겪을 일도 배울 일도 없다

다른 세상으로 떠나자

여기 말대로 돌아가자

 

지구가 준 60년 된 이 몸뚱어리

애지중지 애면글면 아플세라 다칠세라

재고 달고 들여다보던 저 똥주머니

고맙긴 했지만 이제 그만 내버려 두자

제 알아 살라고 풀어주자

 

6) wikipedia, Memento mori 참조

 

7) Hodie mihi, cras tibi

 

亡者之嘆

 

죽음을 평생 이웃으로 두고 살펴왔으나

집에 들이지는 않았더라

이제 이윽고 때가 되어 사랑에 맞이하게 되었으니

그를 어찌 대할꼬

 

예를 다하고 범절을 갖추어 친사(親死)로 대하고자 하였으나

하릴없다

어느새 그는

내 집을 산산이 부수었구나

 

해는 져서 서산에 걸리고 산 그림자 가득한데

멀리서 짐승들 우짖는 소리

집 잃고 몸 잃은 내가 이제

갈 데가 어디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내 은 외뿔코뿔소 되어

 

그때 그 어느 삶의 戰場에서 갑자기

내 어떤 死神에게 어이없게 끌려 나가

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떨어진 그때

푸른 草場과 편히 쉴 물가를 그리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외로이 걷던 그때

나는 외뿔코뿔소가 되었다

 

길고 긴 시간 내내 내 혼은 외로웠다

그러나

무리에서 멀어진 무소는 묵묵히

안으로만 안으로만 익어갔다

모든 번뇌를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이 되어 혼자서 갔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과 같이

흙탕물 속에 깨끗한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이 되어 나만 외로이 갔다

 

전생이 다시 살아난 이 밤

홀로 깨어 마주한 나의 그 어느 죽음 앞에

혼은 갑자기 시리도록 외롭다. 그러나

내 곧 또 하나의 마침표를 찍더라도

다시 외뿔코뿔소 되어 견디리라

自燈明으로 法燈明으로

끝끝내 견뎌 이겨

하느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라

 

8) 죽음에 대한 바람직한 자세를 나타내는 나이의 별칭을 만들어 보자. 모든 생명체는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피하려는 본능이 自動하니 10세 미만은 피사(避死). 나이가 10에 이르면 피사는 공사(恐死)가 되는데 사춘기에 달하면 에고가 극성하여 오히려 망사(忘死)한다. 20대가 되면 정신을 좀 차려 전배들의 도를 배움으로써 죽음의 정체를 밝혀보려고 지도(指道)하며 30에 배움을 종학(終學)하고 이후 40에 살 만큼 살았으니 삶을 지생(知生)한다. 그리고 50에 이르러서야 겨우 죽음이 뭔지를 지사(知死)하고 60에 드디어 혼이 영에 승복하여 종영(從靈)한다. 70에 혼이 심순(心淳)해지며 80에는 마침내 친사(親死)하여 죽음을 맞으러 대문 밖으로 나간다(미주 43 ‘몸과 혼의 성장 속도와 분할환생참조). 참고로 공자님은 15세에 志學, 30而立, 40不惑, 50知天命, 60耳順, 70從心하였다고 하셨다(논어, 위정 편). 그런데 공자께서는 未知生焉知死라 하였는데 40知生하고 50知死한다 하니 너무 수준이 높은 것 아닌가? 공자님의 미지생언지사가 無記였다면 좀 높기는 하지만 달성하지 못할 것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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