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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정영부 | 기사입력 2023/11/23 [10:31]

시간여행

정영부 | 입력 : 2023/11/23 [10:31]

▲ 150여 회에 걸쳐 연재 중인 「영혼학 그 표준이론」이 ‘지식과감성 출판사’에서 지난 최근 출판되었습니다. 독자 제위의 관심을 기대합니다.  © CRS NEWS

 

4. 시간여행

 

 

특수상대성원리1)로 인하여 시간과 속도와의 관계가 밝혀지면서 시간의 상대적 성격이 물리적으로 증명되자 시간여행이 가능할 것이라는 상상이 과학적인 것처럼 포장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 소설로 영화로 하다못해 안줏거리로 애용되었는데 정작 아인슈타인은 한 푼의 특허료도 받지 못하였다. 특수상대성원리가 세상에 나온 지 어언 118년이 지났지만 시간여행에 성공한 사람은 소설가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스티븐 호킹2)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명백한 것이지만, 미래로 가는 타임머신은 있으나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은 없다. 그러나 미래로 가는 타임머신도 상대성이론에서 말하는 시간의 상대적 속도차이를 이용하여 광속으로 달리는 타임캡슐에 들어앉아 있다가 다른 사람들은 다 늙어 죽고 세월이 한참 지난 다음에 캡슐에서 나온다3)는 이야기이므로 애초에 시간여행을 가능케 하는 타임머신이 아니다. 그러니 시간여행이란 현재로서는 공상이다. 그러면 미래에는 가능한 일인가. 미래에도 불가능하다. 공상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각종 불가능한 가정하의 시간여행은 어희(語戲)에 불과하기 때문이다.4)먼저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이 성립하려면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이 전제되어야 한다. 홈으로 돌아가지 않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엑시트(exit)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여행은 과거로의 여행이 진정한 시간여행이다. 그럼 과학이 발전하면 언젠가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해질까? 공상 과학자들은 타임머신이 과거로 가는 방법으로 예닐곱 가지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며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한다.5)그러나 그 아이디어가 실현가능하게 되려면 하나같이 아이디어 하나당 예닐곱 가지의 실현불가능한 전제조건을 내건다.6)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불가능한 이유를 찾는 일에는 실험실이 필요 없다. 자기가 자기를 죽이고 결과가 원인이 되는 타임 패러독스(time paradox)처럼 사고실험만으로도 금방 증명되기 때문이다. 타임 패러독스 외에 어떤 사고실험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1)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시간이 갈수록 우주는 무질서해진다는 법칙이다. 시간이 과거로 흘러간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우주는 질서가 잡히게 된다. 떨어져 깨진 유리컵이 다시 붙고 엎질러진 우유는 다시 컵에 담겨야 한다.

 

2) 따라서 과거로의 여행은 과거 어느 시점으로의 역이동이 아니라 그때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어야 한다. 우유가 다시 컵에 담기는 정도가 아니라 사건 자체가 취소되어야 한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고 우주의 운행이 취소되어야 한다. 어느 법칙이 다른 모든 법칙을 무너뜨려야 성립된다면 이는 법칙일 수 없다. 왜냐면 법칙은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공간이동처럼 시점이동에 불과할 것이라는 상상은 상상일 뿐이다. 시간은 공간에서의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이때 마야론을 들먹인다면 더욱 어처구니없다. 마야의 세계에 어찌 시간만 홀로 실제라는 말인가.7)

 

3) 시간여행을 계속하여 이어가면 빅뱅은 없던 일이 되고 시()와 공()은 무()로 돌아가야 한다. 시간여행은 결국 자기 부정이 된다.

 

4) 과거로 돌아가려면 이미 흐른 시간을 취소하는 방법뿐이다. 아니라면 태초를 넘어선 과거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흐른 시간의 취소는 또 하나의 동작일 뿐이다. 영화가 발명된 후 사람들은 동작의 취소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필름을 거꾸로 돌려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라. 그것은 또 하나의 동작이며 미래로의 흐름이다.

 

5) 시간이란 움직임인데 움직임은 양의 움직임밖에 없다. 음의 움직임이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또 일어났던 움직임을 취소하는 것도 아니며 역동작도 아니다. 이들은 모두 움직임의 종류일 뿐이다. 따라서 음의 움직임은 없으며 음의 움직임에서 상상한 음의 시간도 없다. 또 사람들은 반물질을 보고 반시간(反時間)을 상상하였다. 그러나 반시간이란 것은 없다. 반시간이 있다면 착각이다. 착각에도 반착각이 있다며 따라서 반시간도 있다고 한다면 대단한 머리다. 반시간이 있다고 하여도 과거로의 여행을 위해서는 반시간이 아닌 음의 시간이 필요하다.

 

6) 독자(後生)도 사고실험을 해보라.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보라. 인과(因果), 창조(創造), 경험(經驗), 진화(進化), 소멸(消滅), 미래에서 온 이웃 등 실험재료는 많다.

 

 

▲ 2014년, 우리나라에서 누적관객 수 1000만을 기록한 영화 ‘인터스텔라’ .블랙홀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것으로 인슈타인의 ‘시간 상대성이론’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특수상대성원리가 세상에 나온 지 100년이 훌쩍 넘었으나 시간여행에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래 사진은 영화 ‘인터스텔라’ 중 딸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

 

<註釋>

1) 특수상대성원리와 시간여행

 

1.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광속이 모든 관성계의 관찰자에 대해 동일하다는 원칙에 근거해서 시간과 공간 사이의 관계를 기술하는 이론이다. 1887년 마이컬슨·몰리 실험에 의해 검증된 광속불변의 법칙(*)이 성립하려면 시간(時間)의 절대성이 부인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초속 100km로 달리는 기차의 마지막 칸에서 맨 앞칸을 향해 초속 200km로 달리는 빛을 비췄을 때 기차 밖에서 이를 보는 사람은 빛의 속도가 초속 300km로 보여야 했음에도 관찰결과는 200km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차를 타고 있는 사람은 100km는 기차로 인해 이동하였고 광속은 나머지 100km에 불과하니 광속은 절대 달라지지는 않는다면 [거리/속도=시간]의 공식에 따라 기차 위에서는 시간이 0.5초만 흘러야 된다.

 

2. 이해하기 쉽게 기차를 무빙워크로 바꾸고 빛을 무빙워크 위를 빛의 속도(초속 20m로 가정하자)로 걷는 사람으로 바꿔 보자. 어느 공항에 길이 1,200m의 원형 무빙워크가 있는데 항상 빛의 속도인 초속 20m로 걷는 사람이 초속 10m의 무빙워크 위를 걷는다면 무빙워크 밖에 서 있는 관찰자가 보기에 무빙워크 위의 사람의 이동속도는 뉴턴역학의 속도합산 정리에 의하면 초속 30m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특수상대성원리를 무빙워크를 적용하면 무빙워크를 탄 사람이 걷는 속도가 관찰자가 보기에는 초속 10m로 줄어드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무빙워크 위의 사람 입장에서 자신은 변함없이 빛의 속도인 초속 20m로 걷고 있었다. 그렇다면 속도는 이동거리 나누기 시간인 만큼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손볼 수밖에 없고 따라서 무빙워크 위에 탄 사람의 손목시계는 그사이 0.5초만 흘러야 한다가 된다.

 

3. 무빙워크가 한 바퀴 돌아 다시 출발 지점에 도착하였을 때 무빙워크 바깥에 있는 사람의 시계는 1분이 흘렀을 것이나 무빙워크를 탄 사람의 시계는 40초밖에 흐르지 않는다. 바깥 사람이 보기에 무빙워크 사람은 초속 10m로 천천히 걷고 무빙워크는 변함없이 초속 10m로 운행하였으니 무빙워크를 탄 사람의 이동속도는 초속 20m였고 따라서 60초간 1,200m를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4. 반면 무빙워크를 탄 사람 입장에서는 무빙워크가 40초간 초속 10m400m를 갔고 자신은 그 위를 초속 20m로 걸어 800m를 갔으니 이동속도는 초속 30m가 되어 1,200m40초 만에 완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관찰자를 다시 만나는 순간 그의 시계는 관찰자에 비해 20초가 덜 갔다. 만일 그가 1분을 맞추어 무빙워크에서 내린다면 그는 20초간 600m를 더 가서 관찰자의 반대편에서 내릴 것이다. 그때 관찰자의 시계는 130초가 경과하게 된다. 이런 현상이 이해가 되지 않자 사람들은 그가 30초 후의 미래로 갔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5. 사람들은 무빙워크를 탄 사람에게 그가 축지법을 썼다고 찬사를 보내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그 이유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특수상대성의 원리는 그때도 지금도 상식적이 아니다. 관찰자가 보기에 무빙워크를 이용하든 비행기를 타든 빛을 타든 그것이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없는 이 우주에서 이동속도는 빛의 속도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거리=속도/시간]이므로 거리가 늘어나면 분모인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어찌 쉽게 이해되겠는가. 이는 결국 세상에서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갈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운 사실에서 기인한다. 만일 무빙워크 속도가 19.9m라면 관찰자가 보기에 무빙워크 위를 걷는 사람은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거의 초슬로우모션으로 걷는 것이다. 그 결과 이후 100여 년간 이런 논리에 적응하지 못한 세상 사람들 사이에는 갖은 억측과 상상이 만발하였고 마침내 순환무빙워크를 타임머신이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이건 미래로 간다기보다는 자신의 시간이 관찰자보다 상대적으로 느리게 간 것뿐이다. 진정 미래로 간다면 무빙워크 위의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관찰자의 시야에서 희미하게 사라져가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무빙워크는 타임머신이 아니라 디스턴스머신이나 스페이스머신이라고 불러야 맞다.

 

6. 게다가 타임머신이란 말은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하다는 상상도 불러왔다. 그러나 그건 SF소설일 뿐 과거로 가는 여행은 이론적으로도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재 그렇다는 것이지 미래에는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은 미래에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면 사람이 광속으로 걷게되리라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 초속 30km인 지구 위에서 변함없이 성립하는 뉴턴역학의 여러 물리법칙, 맥스웰 방정식에서의 광속의 상수성, 흐르는 액체 속을 지나는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는 루이스 피조의 실험, 빛의 매질에 대한 마이컬슨-몰리 실험 등에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그런데 광속은 왜 불변일까? 절대영도(絶對零度)와 마찬가지로 넘을 수 없는 최대 속력이 존재하며 이를 질량 0인 광자(photon)가 가지는 것뿐인가? 그렇다면 이 역시 知的설계다.

 

2) 영국의 물리학자로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를 역임한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2016)은 과거여행이 가능하다면 因果論果因論이 되니 어불성설이라 하였다.

 

3) 리처드 고트(J. Richard Gott 1947~)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런 미래 여행 방식이 가능하려면

1. 지금까지 가장 높은 출력을 가진 새턴 5호 로켓의 4,000배에 달하는 물질-반물질 로켓과 물질-반물질 에너지 저장 탱크, 엔진이 녹지 않게 냉각하는 기술, 우주선에 부딪히는 성간 물질로부터 우주선을 보호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한다. 우주비행사가 10년간 광속의 우주 비행을 견디는 것이 가능한지를 제외하고 말이다.

2. 중력이 큰 블랙홀을 이용하면 타임머신의 속도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있다. 그런데 이 타임머신의 지름은 12.6km이지만 질량은 태양의 두 배여야 한다고 하며 이 용도의 블랙홀은 사람이 만들어야 하는데 만들 장소를 찾기도, 만들기도, 해체하기도 쉽지 않아서 현재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네이버 물리산책, 김종립, 과학동아). 그럼 언젠가는 가능할까?

 

4) 과거로의 시간여행()

 

시간단상

 

과거는 없다

강가의 바위에게 과거는

흘러간 물이 할퀸 자국으로 남아

현재를 생생하게 살고 있듯이

과거는 현재의 얼굴을 하고

미래를 바라본다

 

시간이란 없다

움직임만 있을 뿐이다

손을 들어 저으면 휘리리릭 공간이 만들어지고

재깍재깍 시간이 생긴다

움직임이 공간을 만들고 그 시작과 끝 사이에서 시간이 태어났다가

움직임이 사라지면 공간도 시간도 사라진다

 

시간은 무한하다

사람은 거기 언제쯤 죽기 때문이다

시간은 무한하다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은 무한하다

계속 창조되기 때문이다

 

5) 과거로의 시간여행

 

특수상대성이론은 시공간 좌표계에서 빛원뿔을 통하여 시간 순서가 달라질 수 있는 영역과 달라질 수 없는 영역의 경계를 구분한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사건의 시간 순서가 관찰자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인과관계에 있는 두 사건의 순서는 바뀔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부자(父子)가 자부(子父)가 될 수 없음을 꼭 수학으로 증명하여야 아는가? 자기방문 패러독스나 할아버지 패러독스(grandfather paradox) 같은 타임 패러독스는 그 자체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상상일 뿐이라는 것을 직각(直覺)하게 한다.

그러나 공상과학자들은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과거여행이 가능하다고 계속 주장하며 여러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1. 우선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이론물리학과 교수인 킵 손(Kip Thorne 1940~)에 의하면 웜홀이라는 특별한 시공간 구조를 이용하여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웜홀은 시공간이 떨어져 있는 두 지점을 연결하는 조금 복잡한 지름길인데 이는 우주 시공간의 구조를 결정하는 중력방정식을 통해 블랙홀과 비슷한 성질을 갖는 웜홀의 수학적 아인슈타인-로젠 다리자연스럽게얻음으로써 그 구현의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웜홀은 조금 복잡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다. 수학은 4차원도 그 구현이 난망한 과학적 현실에 대고 몇십, 몇백 차원의 세계도 금방 계산한 후 여봐란 듯이 그 존재의 가능성을 떠들어댄다. 초등학생의 算數로도 1/무량대수(1068)mm의 크기의 존재를 쉽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우주는 양자의 세계다. 그처럼 작고 연속하는 숫자는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입자물리학에서 증명된 지가 오래다.(현대 양자역학에서 플랑크 상수보다 작은 값으로 곱하거나 나누어서 만들어지는 물리량은 의미가 없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의미가 없다는 것은 측정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고, 상상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플랑크 상수(Planck constant)의 값은 6.6207017×1/1034J·s이다.) 게다가 웜홀의 수학적 아인슈타인-로젠 다리는 열린 상태를 유지하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질량이 0보다 작은 음의 에너지밀도와 음의 중력을 가지는 특수한 물질이 필요하다. 또 웜홀 입구는 시간지연이 일어날 만큼 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반대쪽은 시간이 느리게 흘러야 한다. 킵의 웜홀은 이러한 있을 수 없는 수많은 가정하에 계산된 . 이런 웜홀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식자층에 각인되어 있다. 마치 종교의 도그마처럼.

 

2. 1949년 수학자 쿠르트 괴델(Kurt Gödel 1906~1978)은 우주에는 아주 큰 우주상수가 있고 우주 전체가 회전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회전하는 우주모형을 고안했는데 그는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계산해 낸 우주인만큼 인과율을 제외하면 이론적인 모순이 없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괴델은 시간여행에 필요한 정확한 우주선의 속도와 연료, 거리와 시간까지 계산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괴델의 회전하는 우주는 현실에 없다. 관측에 따르면 은하는 서로 멀어지고 있으니 우주는 팽창하고 있음이 확실하고, 우주 마이크로파의 배경복사의 온도가 계속 변하지도 않아서 우주가 괴델의 우주처럼 빠르게 회전하고 있지도 않다. 이 역시 초등학생이 1/무량대수의 크기 입자의 존재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과 같다. 괴델도 지금은 이 사실을 알 것이다.

 

3. 과거로의 시간여행에 대한 아이디어로는 우주끈 히치하이킹, 반입자 도플갱어 등이 더 있으나 가장 유력한 두 가지 아이디어가 이 지경이라 더 이상 소개할 의미가 없다. 시간여행을 믿고 싶은 사람은 직접 알아보거나 주변에 있을 수많은 미래로부터의 여행객을 찾아보기 바란다.

 

6) 고바야시 다카요시외 12명 공저, 뉴턴사이언스 출판, 시간이란 무엇인가참조

 

7) 1. 萬一, 이승 마야라면 이승의 시간은 마야이겠지만 그때에도 저승의 시간은 실제다(저승마저 마야라면 하느님도 마야이기 때문이다). 이때 영계의 실체(entity)가 마야의 세계인 이승의 여러 시대를 동시에 살면서 일방이 타방에게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을까? 마야의 가상현실에서 꾸미지 못할 픽션은 없으니 담론조차 못하게 말릴 수는 없을 것이다.

 

2. 헬렌 슈크만이 쓴 기적수업의 해설서로 유명한 개리 레너드의 우주가 사라지다에서 Gary는 과거 12사도 중 도마였던 혼이 수십 번 轉生 끝에 미래에 퍼사(Pursah)라는 Ascended Master(수승한 )가 되어 현생의 자신을 찾아왔다고 한다. 역마차의 존 웨인이 칭기즈칸의 존 웨인을 찾아온 꼴인데 마야의 세계인 은막(銀幕)에서 존 웨인의 두 배역이 조우하는 일이(Time paradox는 가상현실을 빙자하여 묵인하더라도) 도대체 무슨 영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개리 레너드, 우주가 사라지다17우주가 사라지다참조) 그런데 여기서 게리 레너드는 도마 사도의 입을 빌어 우주는 과거에서 현재를 통해 미래로, 원인에서 결과로 꼼짝없이 일직선으로만 흘러가는 단선적인 환영의 세계(linear illusion)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또 우주는 꿈과도 흡사하며, 신은 그것을 창조하지 않았다. 또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모두가 동시에 일어난다. 심지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전게서 2배후의 제이’, 미주 327 ‘마야론참조)라고 한다. 어느 경우든 시간여행을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가. 미래의 은막에 사는 Pursah가 어찌 현재의 은막에 사는 Gary를 찾아와 교설하는지는 차치하고 이쯤 되면 은막에 사는 자가 GaryPursah인지 존 웨인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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