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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과 기억

정영부 | 기사입력 2023/11/16 [10:47]

의식과 기억

정영부 | 입력 : 2023/11/16 [10:47]

 

▲ 150여 회에 걸쳐 연재 중인 「영혼학 그 표준이론」이 ‘지식과감성 출판사’에서 최근 출판되었습니다. 독자 제위의 관심을 기대합니다.  © CRS NEWS

 

이번 153회에는 영혼학 그 표준이론의 제12장 내용 중 의식과 기억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많은 자연과학자들은 의식이란 생각이고 생각이란 기억의 현재형이라고 믿는다.1)게다가 생각이 자아요 자아는 곧 라는 보통의 생각을 대입한다. 이러한 논리 즉 기억=의식=생각=자아=라는 논리에 의하면 기억은 곧 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다. 그때의 생각은 기억으로 물러나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기억이 될 현재의 생각이 지금의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아는 어떤 특정 생각이나 욕망에 나를 일치시킬 때 나타나는 표식이라는 60년대 히피의 영적 기수 람다스(Ram Dass 1931~2019)의 말은 이런 종류의 생각을 적절히 표현한 말이다. 즉 기억이 희미해지면 그때의 나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는 말이나 자의식이란 현재의 생각에 지배를 받아 그 생각을 인격으로 착각하여 나타나는 것이라는 람다스의 말이나 다 같은 것이다. 이들은 생명의 본질은 DNA라고 생각하며, 인간 정체성의 본질은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이를 내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인간의 의식을 컴퓨터나 클론에 업로드하는 가능성까지 다 용인한다.

또 소설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는 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우리의 자아(自我)란 시간 속에 매몰되면서 해체된다고 하며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우리의 사랑이나 고통에서 남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그의 생각으로는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이내 기억에서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사랑이 바뀌면 자아도 바뀌는 것이니 대단한 사랑 지상주의이자 동시에 사랑 마야주의.

불교도 말한다. 나라는 것이 있으려면 자기동일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 즉 나의 몸()이나 느낌(), 생각(), 의지(), 마음() 중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러니 지금까지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은 변화하기에 그 어디에도 나는 없으며 그 어떤 것도 내가 아니다.

신경의학자나 심리학자들 간에 위와 같은 논의가 일반화되어 있다는 것은 기억이 인간정체성(자아)의 본질이라는 사고방식이 이미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 있음을 의미하며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도 치매나 기억상실증, 다중인격, 무의식과 잠재의식, 그리고 최면, 전생기억, 인체 중 기억장소, 빙의, 죽은 이의 혼백 등 여러 현상에서 나타나는 불일치나 혼란으로 인해 기억과 영혼의 관계를 헷갈리고 있다. 이를 기화로 주류 심리학자들은 기억과 의식을 동일시하거나 기억 또는 그 현재형으로서 생각이 의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기억=의식=생각=자아=일까? 그래서 기억이 나일까? 아니 기억 이전에 자극이 있고 인식이 있으니 자극이 나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위 용어들의 사전적 의미부터 살펴보자.

 

1) 인식이란 자극을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일련의 정신 과정이다.

2) 기억이란 인상이나 경험을 저장하고 인출하는 기능 또는 그 저장정보다.

3) 의식이란 대상을 인식하고 추리하며 추상하는 기능으로서 인식과 각성의 합이다.

4) 생각이란 헤아리고 판단하고 인식하는 등의 정신 작용이다.

5) 자기란 인식과 행위와 의식의 주체로서 동일성을 가지고 활동하고 생각하는 그 사람 자신이다.

6) 자아란 사고, 감정, 의지 등의 여러 작용의 주관자로서 이러한 작용에 수반하고, 또한 이를 통일하는 주체다. 표준이론에서는 자신의 주체역할을 영이나 혼이 스스로 느끼는 존재감이다.

 

그런데 위 용어들의 뜻만 살펴만 봐도 의식은 인식과 각성의 합이고 인식은 자극을 받아 이를 저장하고 인출하는 과정이니 저장물인 기억은 의식작용의 일부 또는 필요수단일 뿐임을 알 수 있다. 컴퓨터에서조차 저장물 즉 기억(메모리)은 프로세서의 하부기능이며 프로세싱 또한 의식과 엄연히 다르다. 따라서 기억=의식이 아니라 기억<의식이다.

표준이론에서 기억이란 불교식으로 말하면 육근(六根)을 이용하여 ()으로부터의 자극을 수상행(受想行)의 과정을 거쳐 인식()하는 오온(五蘊)작용으로 얻은 데이터를 프로세싱하여 그 과정과 결과를 저장한 정보다. 즉 기억 이전에 의 자극이 있고 인식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기억은 자극 인식 기억의 과정을 거친다. 다시 말하면 식()이 육근(六根)을 이용하여 인식한 색과 그 과정을 저장한 정보는 기억일 뿐이지 식은 아니다. 이는 마치 사람이 계산기를 두들겨 답(정보)을 구했다고 하여 계산기가 답을 내는 과정이 의식인 것은 아닌 이치다. 어려운 답을 순식간에 구해 CRTLCD화면으로 반짝반짝 선명하게 보여주었다고 해서 계산기에 의식이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양자컴퓨터가 아무리 어려운 계산을 어마어마한 속도로 해냈다고 해도 그것은 계산기보다 우수한 정보처리 속도와 생산된 기억을 저장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지 거기에도 의식이란 없다. 기어코 컴퓨터에서 의식을 찾는다면 그것은 초월모(Transcendental Ware, T/W), 즉 사람이다.

 

의식과 생각은 어떨까? 생각은 의식에 헤아리고 판단하는 기능을 더한 것이다. 따라서 생각을 지혼의 知性정도로 본다면 의식은 혼이 생혼단계에서부터 보이는 제6분별식정도로 본다.2)

한편 자아는 그 뜻대로 사고(생각)와 감정, 의지 등을 주관하는 존재로 생각의 주체다. 데카르트 말마따나 생각은 존재인 자아의 구현물인 것이다. 또 표준이론에서 자아는 자신의 주체인 영이나 혼. 따라서 대충 다음의 공식이 성립한다.

자극 < 인식 < 기억 < 의식 < 생각 < 자아 < 3)

 

사실 불교에서도 연속적이며 불변의 실체로서의 자아란 없다고 할 뿐이다. ‘제행무상 and 제법무아가 아니라 제행무상 so 제법무아라는 의미다. 자아는 부단히 변화 중에 있으나 개체적인 현상을 보이는 것은 불교도 인정하는 바이다. 무아(無我)가 부정적인 표현인 것은 분명하지만 뚜껑을 열어 그 내용을 보면 무상아(無常我)가 들어 있다. 불교의 무아가 염세주의나 허무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오온을 근거로, 영속적이고 변치 않는 자아가 존재한다는 미망과 여기에의 집착을 부정하는 것일 뿐이다.4) 변화무쌍하여 이것이라고 할 게 없는 혼을 극복하고 여여한 진아를 찾으라는 부처님의 방편적 설법인 오온설이 설법 당시부터 너무 복잡한 것이 기화가 되어 이후 온갖 해석이 덧붙여진 것이다.

 

표준이론에서 인구의 76%를 차지하는 2단계 수준 미만의 자아는 영이 없는 혼육의 인간이다. 심지어 3단계 현인이 되기 전에는 君子 수준이라도 영이 없는 사람이 있다. 이들에게 불교의 무아설은 일면 설득력이 있다. 혼은 연속적이며 불변의 실체가 아닌 변화하고 진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영혼육의 사람의 진정한 아는 영이므로 혼육의 사람은 無靈의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無我의 존재는 아니다. 그의 자아의 사랑방에 주인인 혼이 버티고 있는데 무슨 무아라는 말인가. 영과 달리 혼은 항상(恒常)하는 자아가 아닐 뿐이다. 심지어 영도 발전하니 항상하지는 않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그 기억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기억은 프로이트의 잠재의식에 묻혀 있고 더 많은 기억이 혼뇌에 기억된다.5)따라서 기억력 저하는 몸뇌의 성능문제이고 치매는 몸뇌의 기억장치가 고장 난 몸의 병일 뿐이다. 오퍼레이터는 멀쩡한데 컴퓨터의 프로세서나 메모리가 고장 나 시스템이 다운되었다고 해서 오퍼레이터가 퇴근했다고 할 수는 없다.6)

 

자아과 기억 그리고 클론

 

표준이론은 자아의 방주인이 영일 수도, 혼일 수도 있으며 주인이 정해지더라도 주인과 종 또는 주인과 주인이 항상 같이 있는 혼영일체를 말하고 있다. 또한 혼과 영은 이번 생만 같이할 뿐 명종 후 서로 갈 길을 따로 간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영이 있는 사람의 자아는 사후 반드시 영과 혼으로 분열하게 된다. 결국 현재의 자아는 개체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심각한 주장으로 영혼의 영속성에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도대체 내가 둘이란 말인가? 그럼 죽은 후 나는 누구란 말이냐. 내 자의식은 영에게로 가느냐 혼에게로 가느냐. 죽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나를 쳐다본다는 것인가? 우리의 세계는 도플갱어7)의 세계냐? 도플갱어라 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나이고 다른 나는 대상인데 표준이론은 동시에 나라고 하니 그렇다면 자아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에 대해 표준이론은 자아는 존재가 아니라 방이고 장소다. 도플갱어 같은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명종 후 자아의 방이 비워지고 혼영일체가 풀어지면서 혼과 영은 두 존재가 된다. 둘은 이번 생의 동일한 기억을 가지고 헤어지게 되므로 기억의 일부를 공유하는 서로 다른 자아의식의 존재로 돌아가는 것이다.”8)라고 대답한다. 이는 마치 고등학교 동창생과 같다. 탁구나 배드민턴의 복식 파트너와 같다. 일심동체의 부부와 같다. 영화 오블리비언의 클론들과 같다.9)샴쌍둥이는 어떤가. 더구나 기억은 자아가 아니다. 컴퓨터의 메모리장치가 컴퓨터의 주요 부품인 것처럼 기억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장기(臟器)일 뿐이다.10)

 

▲ “표준이론에서는 영화 ‘오블리비언’의 톰 크루즈 같은 클론이 존재할 수 없다. 기억은 자아와 아무 상관이 없으니 기억을 클론에 이식한다고 해서 클론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오블리비언의 톰 크루즈가 과연 존재 가능할까? 영화 오블리비언의 설정이나 개연성에 문제는 없을까? 영과 혼간의 관계와 상관없이 표준이론에서는 톰 크루즈 같은 클론이 존재할 수 없다. 기억은 자아와 아무 상관이 없으니 기억을 클론에 이식(transportation)11)한다고 해서 클론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오블리비언의 톰 크루즈는 태어나지 않는다. 컴퓨터나 클론에 기억을 이식하는 것과 배아를 복제해서 인간을 길러내는 것은 서로 다르다.12)배아복제는 새로운 형태의 번식이다. 과학이 발전하여 새로운 의사소통수단인 핸드폰이 만들어지듯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그런 번식방법을 권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시험관 아기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모두 하느님께서 허용하신 일이니까.13) 

 

<註釋>

1) 사전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여 생각에 어떤 사람이나 일 따위에 대한 기억라는 뜻도 있다고 풀이한다(미주 150 ‘마음에 대한 여러 이론참조).

 

2) 6.3.3.5.1. ‘정신과 생각 그리고 의식’, 미주 161 ‘생각에 대한 생각들 참조

 

3) 이는 불교의 오온과 식이론과도 통한다. 자극()<인식()<기억()<의식()<생각(6, 분별식)<자아(7식 말라식)<(8식 아뢰야식)

 

4) 서정형, 밀린다팡하, 해제 참조

 

5) 바닷가 바위가 수만 번 파도의 흔적으로서 현존인 것처럼 기억은 영혼에 들이치는 파도다. 기억은 사라지지만 영혼을 깎아 내고 다듬어 흔적으로 남는다. 이를 요가학파 창시자인 파탄잘리(기원전 150년 경)기억이라는 것은 경험한 대상을 잊지 않고 마음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라자요가의 요기 사와스라티는 이에 기대어 경험은 모두 행()이 되어 마음() 내에 축적되는 것인데 이들 행은 신체 내외에서 호출을 받아 재차 마음에서 끓어올라 불려 나온다. 이것이 기억이다.”(사라스와티, 혼의 과학, 272)라고 하여 기억은 모두 혼에 저장된다고 한다. 그에게 두뇌는 보조기관일 뿐이다. 표준이론도 기억의 발동은 혼이 하는 것이니 기억을 혼뇌에서 끌어오던 두뇌에서 끌어 오던 외양을 같으므로 파탄잘리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본다.

 

6) 치매에 대하여

1. 치매란 기억력, 언어력, 시공간 지각력, 계산력, 집중력, 실행력 그리고 복합인지기능에 장애가 생겨 지적 능력이 감퇴하거나 감정, 성격 등에 변화가 오는 질병이다. 의학적으로는 치매를 그 원인에 따라 퇴행성 뇌질환, 뇌혈관질환, 그리고 뇌염, 뇌막염, 비타민결핍증, 호르몬장애 등에 의한 2차적 치매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한다. 치매와 유사한 알츠하이머병은 주로 유전적 원인으로 불용성 베타 아밀로이드가 과다 생성되고 침착되어 뇌에 독성을 나타내어 발병한다. 한마디로 치매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뇌가 손상되어 그 기능이 저하되는 질병이다.

2. 사람들은 오랫동안 건망증이나 그 중증으로 보이는 치매를 보아오면서 나이들어 두뇌가 손상되면 사람의 정신이 저렇게 고장 나는구나 하는 것을 체험하였다. 따라서 옛날부터 치매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람의 의식은 두뇌의 기능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했으며 이 의심이 커져서 기억이 의식이고 의식은 생각이며, 생각이 곧 정신이고 마음인데, 이 마음이 죽은 후에도 영존하여 영혼이 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영혼도 마음도 정신도 생각도 모두 두뇌의 기억이거나 기억과 관련된 기능일 뿐(미주 299 ’명상과 컴퓨터참조)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여 왔다. 이는 달걀에서 닭이 태어나는 것만 보아온 어느 사람의 달걀이 먼저라는 믿음 같은 것이다. 이 믿음은 근대 이후 정신의학자들의 의식은 컴퓨터처럼 기억에 기반한 두뇌의 전기적 처리작용일 뿐이라는 주장에 힘입어 인류 정신사를 무신론 중에서도 가장 저열한 무신론으로 오염시켰다. 역사적으로 치매가 영성의 적이었던 셈이다.

3. 특히 치매는 기억력의 저하에서부터 시작되고 그것이 질병의 주요 증상이기 때문에 두뇌기억장치가 고장 나면 의식도 정신도 고장 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먼저 기억이 의식인지 그리고 의식이 생각이며 정신인지에 대하여 살펴본다.

1) 기억이란 불교식으로 말하면 식()이 육근(六根)을 이용하여 인식한 색()과 거기에서 추출한 데이터를 프로세싱하여 그 과정과 결과를 저장한 정보다.

2) 이는 컴퓨터가 입력장치를 통해 인풋된 자료를 중앙처리장치로 처리하여 이를 기억장치에 저장하는 컴퓨터 프로세싱 과정과 비교된다. 컴퓨터에서 자료나 정보의 저장물 즉 기억(메모리)은 프로세싱의 산출물일 뿐이다. 따라서 프로세싱에도 못 미치는 기억이 의식일 수는 없다.

3) 기억은 의식이 아니니 기억이 영혼까지 가려면 거쳐야 할 가장 기초적인 검토에서 그 논리가 깨졌다. 따라서 더 이상의 논의는 필요가 없겠지만 그래도 워낙 중요한 주제이니 좀 더 살펴보자. 컴퓨터가 대단한 위력을 보이자 기억이 의식이라는 주장은 점차 수그러들고 이번에는 컴퓨터의 프로세싱이 의식이라는 주장이 나타났다. 의식이 각성과 인식의 합이라면 각성은 컴퓨터에 전기가 들어온 상태이고 인식은 데이터를 처리하는 일이니 의식은 컴퓨터가 전기의 힘으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프로세싱과 유사하다는 주장이다(미주 164 ‘무의식에 대하여 참조).

4) 그러나 컴퓨터의 프로세싱 역시 의식이 아니다.

(1) 의식(意識)의 사전적 정의는 각성상태에서 대상을 인식하고 추리하며 추상하는 기능인데

우선 인식(認識)자극을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일련의 정신 과정이다. 그러나 인식에는 없는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는 창의(創意)는 없다.

그런데 추리(推理)는 어떠한 판단을 근거로 삼아 알지 못하는 다른 판단을 이끌어 내는 것이고 더구나 추상(抽象)은 사물이나 개념에서 특성이나 속성 따위를 추출하여 파악하는 작용이니 추리와 추상에는 반드시 창의(創意)가 필요하다.

(2) 컴퓨터의 프로세싱은 외부로부터의 인풋 자료를 미리 주어진 메모리 정보와 사전에 정의된 함수(函數)를 사용하여 처리한 후 정해진 답을 재빨리 찾아내는 일이다. 컴퓨터 프로세싱 역시 인식처럼 문자 그대로 컴퓨팅(computing)작용일 뿐 인풋, 조건, 함수 그 어디에도 창의는 없다.

(3) 사람들은 바둑고수를 이겨내는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를 보고 바둑의 수()에 창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대규모 기억장치(Massive Memory)와 성능 좋은 연산장치의 재빠른 처리(Rapid Processing)의 아웃풋일 뿐이다. 이를 창의로 생각한다면 컴퓨터만도 못한 생각이다. 따라서 알파고의 프로세싱에도 의식이 되는 데 필요한 창의성은 부재한다.

5) 의식의 또 다른 요소인 각성(覺醒)은 정신을 차리고 주의 깊게 살피어 경계하는 태도다. ‘전기가 들어와서 컴퓨터에 불이 켜져 있으면 각성한 것이라는 판단은 마치 강시(僵尸)나 몽유(夢遊)상태를 각성상태로 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따라서 프로세싱 중 전기가 흐르는 것과 각성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6) 또한 사람의 의식은 의식 중에서도 자의식(自意識)이다. 의식은 식물의 혼인 생혼이 되면 갖게 된다. 그러나 자의식은 사람의 혼(지혼)이 되어야 발현하는 것인데 프로이트 이래 보통 에고라 하고 힌두철학에서는 아함카라(ahamkara)라고 하였으며 불교에서는 말나식(7)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6식인 의식의 윗 단계다. 컴퓨터 프로세싱이 의식이 되려면 프로세싱이 반드시 구비하여야 할 것이 바로 이 자의식이다. 과연 컴퓨터가 자의식을 가질까? 의론이 필요 없는 일이긴 하지만 하도 말이 많으니 더 생각해 보자.

자의식은 그 사전적 의미가 외계나 타인과 구별되는 자아로서의 자기에 대한 의식으로 표준이론의 정의로는 정신체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이다. 자의식의 속성은 군혼이었던 각혼이 개별화되어 지혼이 되면서 그 개체성으로 인해 갖게 된 이기심과 자존심이 그 중요한 속성이다. 요즈음 각광받는 양자컴퓨터 정도가 되면 컴퓨터가 이기심과 자존심을 갖게 될까? 오늘날 그 답이 부()임은 모두 다 안다. 그러나 많은 정신의학자들은 양자컴퓨터는 고사하고 컴퓨터도 없던 시절부터 의식을 전기작용이라고 단정하여 왔다. 지금에 와 보니 그것은 자의식을 미비한 각혼 수준의 판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수퍼컴퓨터나 양자컴퓨터는 초고속 컴퓨팅과 대규모 기억용량으로 인간의 두뇌를 물리적으로 능가하니 그 프로세싱이 자의식은 아니더라도 지능(Intelligence) 정도는 된다하며 검색엔진에 불과한 Chat GPT에 열광하는 대중을 향해 시간의 신을 포교하고 있다.

7) Intelligence란 단어가 우리말의 지능(知能)으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고 지성, 이지(理智), 지혜(智慧), 총명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우리말의 지능 또한 지혜와 재능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새로운 대상이나 상황에 부딪혀 그 의미를 이해하고 합리적인 적응 방법을 알아내는 지적 활동의 능력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는 만큼 Intelligence나 지능이란 단어는 이미 생각이나 정신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단어이다. 따라서 이는 오히려 출중한 정신수준을 암시하고 쓰는 단어라고 본다. 곰이 마늘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사람이 되지 않는 것처럼 어려운 계산을 어마어마한 속도로 해냈다고 해서 계산기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양자컴퓨터가 계산기보다 우수한 정보처리 속도와 생산된 기억을 저장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지 양자컴퓨터가 생각을 가졌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8) 결론적으로 빠른 속도의 프로세싱이 의식이나 나아가서 정신이나 생각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AI(Artificial Intelligence)는 방대한 기억량(MM, Massive Memory)RP(Rapid Processor)를 갖춘 AI(Artificial Instrument)일 뿐이다.

9) 그런데 모든 프로세싱에는 이를 주도하는 주체가 있는 법인데 컴퓨터의 경우 그 주체는 어디 있는가. 그 주체는 초월모(Transcendental Ware, T/W)로서 컴퓨터를 운용하는 사람이다.

10) 종합하면 기억과 의식은 서로 다른 것이고 또한 컴퓨터의 프로세싱도 의식이 아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치매는 사람의 두뇌의 기억기능의 저하로 나타난 질병일 뿐 이로써 외부 운영자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그의 죽음을 주장할 수는 없다. 외부운영자는 컴퓨터가 고장 나서 쉬고 있는 것이다. 어제까지 어마어마한 능력을 보이던 양자컴퓨터가 오늘 갑자기 메모리장치가 고장 나서 입출력되는 데이터가 엄청나게 느려지거나 중단된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양자컴퓨터의 운영자가 치매에 걸렸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AI니 클론이니 하며 그 양자컴퓨터를 숭배하던 자들도 마찬가지다.

4. 그러면 기억력 등 두뇌의 기능저하에서 오는 지적 능력의 감퇴는 컴퓨터의 외부운영자 즉 영혼과 아무 관계없음을 알겠는데 감정, 성격 등 분명히 혼의 기능으로 보이는 부분의 변화가 오는 치매는 무슨 이유로 나타나는가? 전술한 대로(6.12.2. ‘표준이론의 의식구분참조) 혼의 성격 정보는 혼뇌에 전사(傳寫)되고 다시 몸뇌의 현재기억에 반영(反影)된다. 따라서 두뇌의 손상이 성격정보의 손상일 경우 각성 중에는 몸뇌에 구속되는 혼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심지어 해리성 장애의 경우처럼 이중인격증세가 나타나 주혼을 몰아내고 종혼의 성격이 외부에 드러나는 현상까지 발생시킬 수 있다.

5. 한편 의학은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치매 역시 생기체의 손상에서 기인할 수도 있다. 혈액순환의 문제로 인하여 뇌경색이나 뇌출혈이 발생하여 두뇌가 손상되듯 생기(프라나)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여 생기체 혼뇌의 경맥(經脈)과 낙맥(絡脈)이 막혀 기 대사시스템의 기능이 원활하지 못하면 몸뇌의 같은 부위 손상을 불러온다. 달걀이 닭이 되는 것만 보아온 사람은 달걀이 먼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닭이 먼저이니 치매의 경우에도 혼뇌의 손상이 먼저인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참선을 통하여 기의 순환을 원활히 하여온 고승들이 치매 없이 장수하는 이유다, 연대가 확실한 나말여초 시기 22명의 고승 기록을 분석한 결과 그들의 평균 수명은 73.5세였다(이현숙 나말여초 고승들의 질병과 죽음금석문 자료를 중심으로참조). 그러나 경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삼국시대 지배층 고분에서 출토된 인골들의 사망 당시 수명은 30~40대에 그쳤다. 고려 시대 귀족 평균 수명도 39.7(김용선, ‘고려시대 묘지 금석문 320여 개 분석 결과참조)였다. 일반적으로 혼이 수승한 경우에는 치매가 예방되거나 극복될 수 있다. 따라서 고승이나 현인과 성인 같은 고급혼과 중급영 이상을 가진 사람들은 치매가 없고 정신이상도 없다. 그 이유는

1) 그들은 어느 정도 생기체를 장악하여 생기체의 병소를 치료하거나 그 발병을 예방한다. 또 생기체를 통하여 몸뇌의 치매 병소를 스스로 치료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의 경우에도 드물기는 하지만 임종명석현상으로 순간적으로 치매가 극복될 수 있다.

2) 그들은 치매라는 수준 낮은 업 또는 과제를 타고 나지 않는다.

3) 치열하고 수준 높은 思考는 뇌에 물질적인 영향을 주어 치매를 예방한다.

4) 그들이 환생처를 고를 때 유전적으로 치매에 약한 몸은 거부한다.

6. 다만 이 경우에도 분할환생의 논리를 치매의 원인으로 거론할 수 있다. 혼의 고급기능인 양심체(신지학의 코잘체)나 정신체의 상위기능을 수행하던 혼의 부분이 後入先出로 먼저 저승으로 귀환하는 통에 혼의 기능이 低劣化되고 그것이 생기체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다시 육체의 몸뇌로 연결되어 나타나는 증상이 치매라는 것이다. 이때 치매 발병의 기작은 다음과 같다(미주 43 ‘몸과 혼의 성장 속도와 분할환생참조).

1) 신지학적 의견 : 양심체(코잘체)의 이탈 상위정신체(멘탈체)의 이탈 의 쇠퇴 생기체의 약화 혼뇌의 쇠퇴 몸뇌의 쇠퇴 치매 발병

2) 분할환생론적 의견 : 혼의 부분적(분할) 이탈 의 쇠퇴 생기체의 약화 혼뇌의 쇠퇴 몸뇌의 쇠퇴 치매 발병

7. 길게 살펴본 바와 같이 자아(自我)가 사후에도 영혼으로 존속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데에 치매를 들먹이는 주장은 이유 없다. 그 주장은 알고 보면 무신론자들이 무신의 피와 회의의 눈에 휩쓸려 만들어 낸 몸이 죽으면 자아도 소멸한다는 막연한 주장이 그 실체일 뿐이다.

 

7) 미주 54 ‘자의식의 장애와 표준이론참조

 

8) 생시의 대부분의 시간을 혼이 자아의 방을 장악하고 살았다면 자아의식은 혼을 따라가고 반대로 영이 자아의 방에 항상 깨어있었다면 자아의식은 영에 있다. 그러면 자의식은 무언가? 표준이론에서 자아의식과 자의식은 다르다. 자아의식은 자아의 방을 차지하고 있는 주인의 의식이고 자의식은 에고의 의식 즉 혼의 의식이니 자아의 방을 혼이 차지하고 있을 때를 의미하는 단어다. 자아는 방이고 자아의식은 방주인의 의식이며 방주인은 혼이나 영인만큼 자아의식은 결국 영의 의식 아니면 혼의 의식인 것이다(4.1. ‘자아(自我)의 정의참조).

 

9) 1. 프로이트의 에고와 초자아 또는 신지학의 아트마-붓디-마나스와 표준이론의 영혼일체와는 생시에는 유사하겠지만 명종 후 동일체의 여러 속성에 불과한 이것들과 표준이론의 영혼은 같을 수가 없다.

2. 영화 오블리비언(Oblivion)’의 복제인간(clone)들은 가진 기억의 90% 이상이 서로 동일하다. 이는 혼영일체보다 더 심하다. 태어난 후 불과 얼마 전까지의 모든 기억이 같은 톰 크루즈가 수백 명이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지만 혼영일체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10) 미주 317 ‘치매에 대하여’, 미주 161 ‘생각에 대한 생각들 참조

 

11) 1. 세포주(細胞主)의 체세포핵이 체세포 핵치환(Somatic-cell nuclear transfer, SCNT)에 의해 난자에 이식되어 생식복제로 만들어진 태아를, 시험관에서 속성으로 길러 성체(클론)를 만든 후 여기에 기억주(記憶主)의 기억을 이식하면 온전한 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전제하에 영화 오블리비언은 만들어졌다. 그러나 태아를 시험관에서 성체로 길러내는 일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기억의 추출과 이식은 아직 요원(遙遠) 또는 난망(難望)한 일이거니와 표준이론은 혹시 기억을 이식하였다고 해도 의식이 같이 이식된다는 주장은 용인하지 않는다. 기억이 의식은 아니거니와 의식은 혼의 기능이고 사람의 혼은 혼계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억이식에 의한 의식의 발생은 불가하다 하더라도 클론에 사람의 혼을 끌어올 수는 있을까?

2. 클론에 혼이 들어오려면 우선 생기체가 생겨야 한다. 그런데 세포주(細胞主)의 체세포핵을 이식받은 실험관 안 난자의 선천지기가 생기체씨앗을 형성시키고 그 생기체씨앗이 생기계에서 생기체 본체를 끌어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거기에 저승의 윤회혼이 들어와 의식이 발생하여 온전한 사람이 탄생할까? 돌리가 각혼을 가졌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미주 149 ‘魂腦에 대하여참조).

 

12) 1. 1996년의 복제양 돌리처럼 체세포의 생식복제로 사람의 아기가 태어난다면 그가 돌리와는 달리 설령 체외의 시설에서 배양되어 태어난다 하더라도 현재의 시험관 수정 아기처럼 그는 사람의 혼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2. 가까운 미래에 가족제도에 기반한 시험관 수정 아기가 아닌 체세포 클론 아기가 사람이 탄생하는 주요방법이 될 것인데 이는 의료기술의 발달뿐 아니라 가족제도가 무너지는 사회현상과 갈수록 낮아지는 출산율을 보면 당연한 인류의 미래다.

3. 한국의 낮은 출산율의 해결방법과 표준이론

표준이론 입장에서 다음의 출산장려정책이 그 시행에 기술적 문제점만 없다면 하느님의 섭리에 전혀 어긋나지 않는다.

1) 정자은행과 난자은행의 합법화와 그 설립지원 및 냉동보관 시술 지원

2)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공여 받은 시험관 수정 아기 시술 지원

3) 체세포 생식복제에 의한 인공수정 연구 합법화

4. 선진 각국에서 출산율이 낮아지는 이유는 이승의 문제가 아니라 수십 생 이상을 전생한 중급혼 이상의 혼이 부족함으로 인해 그 공급이 어려워 발생한 저승의 문제일 수 있다.

 

 

13) 신이 허용하지 않은 일은 일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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