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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운동의 역사와 참사랑 평화운동
참사랑 평화운동은 하나님 중심으로…인간 중심으론 한계 봉착
기사입력: 2017/11/11 [21:15]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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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竹)의 장막’ 중국을 열어 세계를 평화롭게 한 것은 불과 2g의 탁구공이었다. 빠른 핵폭격기도 거대한 항공모함도 아니었다. 한반도의 상황도 마찬가지라 본다.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것은 결국 탁구공처럼 작고 귀엽고 친밀한 그 어떤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뭘까. 긍정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프로젝트가 20년 전 시도된 사례가 있다. 

리틀엔젤스와 만경대학생소년궁전예술단의 남·북한 공연은 창의적이고 통찰력 있는 작업이었다. 리틀엔젤스는 천상의 목소리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세계인의 가슴을 녹인 ‘작은 천사들’이다. 남북 사이에 단절된 길을 열기 위해 천사 같은 소녀들이 먼저 북으로 갔다. 1998년 5월2일부터 12일까지였다. 단원들은 한국 전통무용 등 세계를 무대로 갈고닦은 실력을 북한사람들 앞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발랄하고 구김살 없는 몸짓은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만경대학생소년궁전예술단은 2년뒤 2000년 5월 서울에 왔다. 그해 5월 26∼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리틀엔젤스의 평양공연에 대한 답방형식이었다. 10대 소년소녀 78명으로 구성된 궁전예술단은 잘 훈련된 프로팀이었다. 악기 연주 수준이 높았고 가창력이 뛰어났다. 억지 미소가 부자연스럽기는 해도 끊임없는 훈련의 결과인지 음악과 잘 어우러졌다. 그 가운데 이모군의 독창은 출중했다. 필자도 그때 공연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지금도 유튜브에서 확인이 된다.

남북 아이들의 교류가 한반도 평화에 큰 도움이 될까. 이에 대해 통일재단 고위관계자의 전언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서울로 내려온 북한 아이들 호텔방과 버스의 커튼은 내려져 있었다. 하지만 티 없이 맑은 아이들에겐 거짓말과 통제가 잘 통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틈만 나면 흘금흘금 휘황찬란한 바깥풍경을 내다봤다. 쇼핑센터에서 예쁜 인형과 장난감을 갖고 싶어 했고 맛있는 과자를 선물하자 더없이 좋아했다.”

이 관계자는 “어른들이 선물 보따리를 압수하고 입을 막아도 아이들은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친구들 귀에 소곤소곤 말했을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멀리 내다보는 눈이 있어야 길이 보인다. 작은 교류가 큰 대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동안 평화운동은 인류 탄생 이래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촌은 여전히 평화의 세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평화운동의 역사와 흐름을 살펴보고 무엇이 진정한 평화운동인지 살펴본다.    

평화운동의 역사와 흐름    

반전(反戰) 평화사상의 역사는 멀리 기원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조직적인 운동으로서 추진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평화운동의 기반으로서는 종교적 신념에서 출발한 것, 정치적 신념에서 출발한 것, 또는 널리 휴머니즘이나 양심에 기반을 둔 것 등 여러 가지 입장이 있으나 가장 오래 된 것은 전쟁 자체를 죄악시하는 종교적 입장에서의 운동이다. 이는 1815∼1816년에 영국·미국 등지에서 부전비폭력(不戰非暴力)을 주장하는 평화협회(Peace Society)라는 조직이 설립되면서부터 국제적 활동이 시작되었다. 메노나이트 ·퀘이커 등의 그리스도교 교파는 절대평화주의를 내세웠다. 그 이후 19∼20세기에 걸쳐 제국주의 열강의 시장쟁탈, 식민지 재분할을 위한 전쟁이 빈발하자 반전운동은 상당한 규모로 전개되기에 이르렀고 특히, 사회주의 입장에 선 운동이 활발해졌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이러한 평화운동은 점차 그 힘을 더해 갔으며, 이탈리아·독일 등에 파시즘(fascism: 1919년 이탈리아의 B.무솔리니가 주장한 국수주의적·권위주의적·반공적인 정치적 주의 및 운동을 말함. 원래 묶음[束]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파쇼fascio에서 나온 말이었으나, 결속·단결의 뜻으로 전용轉用 되었음)이 등장하여 전쟁의 위협이 증대되자 반전·반파쇼 운동이 대규모화하였다. R.롤랑, H.바르뷔스 등이 제창한 암스테르담 반전세계대회(1932)는 사상(思想)·신조(信條)에 관계없이 널리 사람들을 반전·반파쇼 통일전선에 결집시킬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평화운동은 전전(戰前)의 반전운동과 비교할 때, 새로운 특징과 전망을 가진 것으로 구별된다. 첫째, 일시적 평화의 유지가 아닌 전쟁의 절멸, 항구평화의 실현을 지향하되 사회주의적 변혁을 직접의 목적 내지 전제로 삼지 않으며 민주주의적인 목적에만 한정하고 있다. 둘째, 정당·파벌·사상·신조의 차이를 초월하여 광범위한 각 계층을 결집하였으며, 그것에 의하여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전후(戰後)의 평화운동의 새로운 특징과 전개는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한 파시즘의 타도와 민주주의의 승리에 의해서 이룩된 전후의 역사적·사회적·정치적 제(諸)조건에 의해 지탱, 추진되어 왔다. 전후 ‘냉전’으로 일컬어지는 새로운 국제 긴장이 나타나 1949년 4월에 북대서양조약(北大西洋條約)이 미국을 중심으로 12개국에 의해서 조인되었다. 이 냉전의 격화를 배경으로 세계 각국에서는 평화위원회가 조직되었다. 1950년에 결성된 ‘세계평화평의회’는 원자무기의 금지, 군비확장과 군사블록 반대, 식민지체제의 반대, 전쟁 준비의 파시스트 정권 반대, 일본·독일의 재군비 반대 등 세계평화운동의 기본방향을 밝히고 △평화공존 △교섭에 의한 분쟁해결 △민족자결·내정불간섭을 국제평화의 3원칙으로 내세워, 이에 찬성하는 한 사상·신조를 불문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또한 세계정치가 미·소(美蘇)의 대립을 기축으로 양국 충돌로 인한 대전의 위험을 안고 있던 1950년대에, 이 운동은 큰 영향력을 가졌다.

이와 같은 운동과 국제여론의 고조는 6 ·25한국전쟁의 휴전 성립(1953년 7월), 4대국 외상회의의 재개(1954년 1월), 월남전의 정전(1954년 7월)을 거쳐 4대국 정상회담(1955년 7월)에 이르는 국제긴장 완화의 국면타개에 있어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1955년 1월에는 핵 전쟁의 위협을 저지하기 위한 핵전쟁 준비 반대서명운동(빈 어필)이 전개되었고, 같은 해 6월 헬싱키에서 개최된 세계평화집회에서는 68개국의 대표가 회합하여, 원자무기의 완전폐기를 포함하는 군축(軍縮)을 강조하고 8월6일을 ‘군축과 원자무기의 금지를 요구하는 세계평화행동의 날’로 결정하였다. 이 1950년대의 세계평화평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평화운동은 평화를 위한 국제여론과 행동을 조직하는 데 큰 역할을 하여, ‘여론이라는 새로운 대국(大國)’을 출현시켰다.

월남전쟁의 종언(終焉)과 미군의 베트남 철수는 미국의 대(對)아시아 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 결과는 대중국 정책의 전환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났다. 1970년대에 들어와 비정부기구(NGO) 군축위원회를 축으로 하여 핵무기의 폐절을 지향하는 국제적인 여론과 행동은 유엔군축특별총회 개최(1978년 5∼6월)에의 길을 터놓음으로써 새로운 방향 전개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1978년 5∼7월에 뉴욕에서 개최된 유엔군축특별총회는 별다른 성과 없이 폐막되었다. 그 뒤에 제2회 유엔군축특별총회가 1982년 6∼7월에 있었으나 1980년대를 ‘군축 제2의 10년’으로 하는 선언이 채택되었을 뿐, 포괄적인 군축계획의 책정 등 구체적인 방안은 뒤로 미루어졌다. 한편 미·소 양국의 전략무기제한을 위한 제1차 교섭(SALT Ⅰ)과 제2차 교섭(SALT Ⅱ)에 이어 제3차 교섭(SALT Ⅲ)이 시작되었으나, 1980년 1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SALT Ⅱ는 비준이 중지되고 SALT Ⅲ도 중단되었다. 따라서 미·소의 대립이 격화 내지 표면화됨으로써 평화운동은 통일이 어렵게 되었고, 운동의 효과도 그만큼 약화·상실되었다. 

증오의 反美·反北 구호로는 불가능 

북핵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글을 올려 다시 북한에 경고했다. “우리를 과소평가하지 말라. 미국을 시험하지 말라”고. 우리 국회에서 한 말을 재차 강조했다.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파국을 경고하는 글이다. 미국은 군사옵션 대신 ‘전면 제재’ 쪽에 무게중심을 두기 시작했다. 외교적 해법이 실패하면 군사적 해법이 다시 등장할 것이다. 중국의 협력이 한반도 평화를 가름하는 분수령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중국은 예전처럼 말로만 제재를 외치며 북한에 뒷문을 열어줘선 안 된다. 그동안 중국은 표리부동했다. 북한이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을 감행하는 상황에서도 대규모 북한 지원에 나섰다. 1∼8월 중국의 대북 수출은 전년보다 25.3%나 늘었으며, 8월에는 스스로 공표한 석탄 금수조치까지 내동댕이쳤다. 그래 놓고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동시에 중단해야 한다는 ‘쌍중단’ 주장만 되풀이한다.

중국이 이중적 행태를 계속하면 북핵 문제는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이는 중국에게도 엄청난 피해로 돌아간다. 주변국의 핵무장, 대중(對中) 제재가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핵 파국’을 면하기 위해 중국은 이제 행동에 나서야 한다. 국제사회가 중국의 행동을 낱낱이 지켜보고 있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면서 남북한의 길도 꽉 막혔다. 대북경제 봉쇄는 중국의 동참으로 압박의 힘이 아주 강해졌다. 미국의 무력은 세계 최강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평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필요한 것은 평화를 향한 강한 의지이다. 바람에 나부끼는 작은 불씨라도 살리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번 국빈 방한(訪韓) 기간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조롱하거나 위협하지 않았다. 국회 연설에서 ‘폭군’, ‘독재자’ 등의 표현은 썼지만 ‘로켓맨’ 같은 종전의 말 폭탄은 삼갔다. 이런 실낱같은 싹을 놓치지 않고 키우는 것은 우리 역량에 달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기간 동안 반미(反美)시위대는 평화를 외치면서 폭력도 불사했다. 물통과 쓰레기를 던져 트럼프 대통령 일행이 탄 차량을 역주행하게 만들었다. 성조기를 불태우고 트럼프 대통령 얼굴 모형에 빨간 스프레이를 뿌려 모욕했다. 아무리 미국을 향한 적대감이 커도 평화를 입에 담으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평화를 외치려면 마음속 증오심을 먼저 걷어내야 한다.
▲ 11월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한반도 평화통일 세계대회’   모습

참사랑 평화운동은 하나님 중심한 새로운 모델       

지구촌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교와 정치지도자들이 한결같이 평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참된 평화의 길은 찾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 테러와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평화에 대한 근본원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된 평화는 개인의 마음과 몸의 균형된 건강 상태의 유지에서 출발한다. 세계평화도 똑같은 원리이다. 평화는 대상과의 상호 소통과 조화를 이뤄서 하나 되는 것이다.

인류 사회의 불안과 갈등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벗어나 타락함으로서 마음과 몸이 하나 되지 못해서 생겨났고, 이것이 끊임없는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평화운동은 하나님을 중심하지 않고는 안 된다. 인류는 지금까지 역사를 통해 줄곧 인간을 중심한 평화운동만을 전개해 왔다. 불완전한 인간만을 중심삼고 전개하는 평화운동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그 한계에 부딪쳐 좌절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직접 운행하여 역사를 섭리할 수 있는 때를 아직 맞이하지 못해서 인류의 평화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구촌에는 갈등과 전쟁이 뜮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평생을 인류평화 실현을 위해 헌신해 온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창시자 문선명·한학자 총재의 평화운동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바탕을 둔 참사랑 운동이다. 그런 면에서 여타 평화운동과는 달리 한계에 봉착하지 않고 인류에게 새로운 소망이 되고 있다.

이에 관해 문선명 총재는 “평화세계로 가는 지름길을 찾아 정치를 변화시키고 사상을 바꾸는 일에 열중하기도 했습니다.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나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화해를 시도했고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만나 한반도의 평화를 담판했습니다. 또 도덕적으로 무너져가는 미국에 가서 청교도 정신을 일깨우는 소방수 노릇을 하며 세계의 분쟁을 막는 일에 골몰했습니다. 이슬람교도와 유대인의 화합을 위해 테러가 난무하는 팔레스타인에 들어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유대교와 이슬람교, 기독교인들 수천 명을 한자리에 모아 화해의 광장을 마련하고 평화행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만 갈등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우리나라에서 평화세계가 활짝 열리는 희망을 봅니다. 숱한 고난과 분단의 슬픔으로 단련된 한반도에서 세계의 문화와 경제를 이끌어갈 거센 기운이 용틀임하며 솟구치는 것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문선명 총재의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의 서문 중에서>라고 역설했다.

그런 점에서 11월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한반도 평화통일 세계대회’는 주목의 대상이다. 통찰력 있는 진정한 평화운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나라 안팎에 보여줬다.

리틀엔젤스와 궁전예술단의 교류는 깊고 어두운 산속에 하나의 오솔길을 연 것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이 오솔길을 자꾸 걷다 보면 큰길이 나고 그 길은 고속도로가 된다. 한반도의 평화운동은 조그마하면서 감동적인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리틀엔젤스와 궁전예술단 교류와 같은 오솔길을 다시 한 번 내야 할 것이다.
<문윤홍·시사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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