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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스리랑카 넘나들며 부처님의 뜻 펼치는 와치싸라 스님
12년 동안 이주민 포교할동가 함께 한국·스리랑카 불교문화 교류에 앞장
기사입력: 2018/04/09 [08:50]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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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9일 서울 강남 학여울역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쎄텍)에서 열린 2018서울국제불교박람회장에서 한국에 거주하며 이주민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법명(法名)이 와치싸라(Welanhinne Wachissara Nayaka Thero)라는 스리랑카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스리랑카관(館)을 개설하고 방문객들을 위해 열심히 상담을 하고 있었다.

와치싸라 스님이 건네준 명함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외국인 상담법사, 재한(在韓)스리랑카 국가지도법사, 조계사부설 이주민센터 마하보디사 주지라는 직함이 한글로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와치싸라’는 스리랑카 말로 ‘말 잘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불법(佛法)을 전해야 하는 스님에게 어울리는 법명이다.

스님이 계신 곳은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마하보디사(寺). 스리랑카어 ‘마하보디’는 ‘큰 깨달음‘이라는 뜻으로, 마하보디사를 번역하면 대각사(大覺寺)가 된다. 박람회가 끝나자마자 4월3일 와치싸라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양주 마하보디사를 찾았다. 사찰이라기도 보다 일반 건물에 부처님 모셔놓고 예불을 드리는 작은 법당이었다.
▲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마하보디사 창립 10주년 기념법회에서 설법하는 와치싸라 스님   

법당 입구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부설 이주민쉼터 마하보타사’라는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스리랑카 이주민들을 위한 상담과 신앙 지도 등을 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일단 외관부터 남방 불교의 색깔이 배어있어 이곳이 남방불교권인 스리랑카 사원임을 일깨워준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득도(得道)했다는 보리수나무가 법당 안에 자라고 있어 원시불교를 고수하고 있는 스리랑카 불교의 진수를 보는 듯했다.         

와치싸라 스님의 출가 동기와 한국에서의 정착     

와치싸라 스님은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남쪽으로 189km 떨어져있는 하푸탈레(Haputale)라는 산촌에서 출생했다. 중부 고원지대 우바주(州)에 위치한 하푸탈레는 드넓은 차밭이 구름과 맞닿아 있는 그림 같은 풍광을 자랑한다. 마을엔 인도에서 건너온 타밀족(Tamil people)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19세기 후반 스리랑카가 영국의 지배를 받을 당시 홍차 생산지로 이곳이 각광받으며 강제로 인도에서 이주되어 온 사연을 갖고 있다. 하지만 차 밭에서 일하는 타밀족 여인들은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항상 밝고 에너지가 넘친다. 이곳에서는 세계적인 명차 실론티(Ceylon tea)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중국의 기문 홍차, 인도의 다즐링 홍차와 함께 세계 3대 홍차인 우바 홍차는 최고의 풍미와 맛을 느끼게 한다. 와치싸라 스님은 이곳에서 13남매 중에 12번째로 태어났다. 그는 애당초 승려가 될 생각이 없었다. 스리랑카, 태국 등 남방불교권 국가에서는 가정에서 아들을 낳으면 어릴 때부터 승려 교육을 해서 출가시키는 게 일반화 돼 있다. 와치싸라 스님의 가정에서도 많은 자녀들 중에 누군가는 스님으로 출가를 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스님의 바로 위의 형 11번째가 출가해서 본격적인 승려교육을 받기 전 예비과정에서 돌연 중단하고 뛰쳐나오는 이변(異變)이 발생했다. 그래서 부득이 가족을 위해서 와치싸라 스님이 형을 대신해 출가를 했다. 그는 순전히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마음으로 출가를 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스님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와치싸라 스님이 출가한 사찰은 고향에 있는 마하보디사. 지금도 스님이 스리랑카에 가면 마하보디사에서 머무르면서 활동한다. 그렇게 해서 스님이 된 와치싸라는 1998년 포교를 위해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인도 부다가야(Buddha Gaya)로 떠났다. 그는 이곳에서 순례객들에게 법문을 전하면서 2003년까지 5년 동안 열심히 포교활동을 했다.

부다가야는 갠지스강의 지류인 팔구강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불교성지 가운데 가장 신성한 곳 중의 하나로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다는 신성한 보리수가 있다. 그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BC 3세기 아소카왕이 아담한 사원을 하나 지었는데, BC 1세기에 이 사원 주위로 둘러 세운 석조난간 일부가 지금도 남아 있다. 난간의 기둥에는 베다에 나오는 인드라신과 수리아신의 초상이 새겨져 있고 상상 속의 짐승들이 원형으로 돋을새김되어 있다.

쿠샨 왕조시대(2세기)에는 이 자리에 오늘날의 마하보디 사원이 세워졌고, 팔라 왕조와 세나 왕조 시대를 거치면서 더 많은 조상(彫像)으로 장식하고 외장했다. 영국의 알렉산더 커닝엄은 19세기 후반에 이 사원을 복구했고, 미얀마의 불교도들이 1882년 마지막으로 복구작업을 끝냈다. 사원의 중앙탑은 높이가 54m에 이른다. 다양한 불교유물을 소장한 박물관이 있으며, 마가드대학교(1962)가 있다.
▲ 와치싸라 스님이 5년간 포교활동을 했던 부다가야  

와치싸라 스님은 이곳에서 한국에서 성지순례를 온 도윤 스님(안성 법계사 주지)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그렇게 해서 도윤 스님의 초청으로 2003년 4월에 한국에 관광을 겸해서 첫발을 딛게 되었다. 때마침 초파일을 맞아 서울 종로일대에서 펼쳐진 연등축제에 참가하게 됐고, 거기에서 스리랑카 이주민들과 만날 수 있었다. 스리랑카 이주민들 삶의 실상과 애환을 직접 듣게 되면서 스리랑카인들을 위한 포교사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포교활동 무대를 한국으로 옮기게 된다.

관광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그는 도윤 스님이 파주 보광사 주지 일문 스님을 소개해 줘서 일문 스님의 도움을 받아 장기체류를 할 수 있었다. 관광비자에서 종교비자로 갱신한 뒤에는 1년 단위로 기한 없이 연장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스님은 포교활동을 활발히 해 왔다. 2003년 6월 경기도 포천에서 스리랑카 이주민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초청 범회를 하기도 했다.

와치싸라 스님은 2005년부터 2007년 상반기까지 경기도 안산에서 마하보디사를 설립해 그곳에 있는 스리강가 이주근로자들의 신앙지도와 상담 등을 했다. 이후 대한불교조계종 본산인 조계사에서 2007년 하반기에 경기도 양주 현 위치에 전세로 건물을 얻어 주어 양주 마하보디사 사찰을 운영해 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전국에 마하보디사와 같은 스리랑가 사찰이 4~5개 있고 법사 스님이 20여명이 있다고 한다. 스님은 2011년 4월25일 국가지도법사 인정을 받았다.

와치싸라 스님에게 불교의 핵심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깨달음이라고 했다. 이는 한국 불자들도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이다. 깨달음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팔정도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념正念·정정진正精進·정정正定을 말함)

수행을 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것 역시 한국 불교가 강조하는 점이다. 특히 재가자 입장에선 5계(戒: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를 수지하라고 했다.

스리랑카불교는 초기불교의 전통을 잘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스리랑카불교에서는 깨달은 각자(覺者)에 따라 아라한, 바체붓다, 삼마 삼붓다로 나눈다고 한다. 스님의 말에 따르면 아라한은 불교 신앙을 열심히 하다보면 그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바체붓다는 자기희생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테면 주변에 생명이 꺼져가는 이에게 자신의 장기를 기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삼바 붓다는 남을 위하여 자기 목숨마저 내놓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스리랑카불교는 한국과 달리 육바라밀(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반야般若)이 아닌 십바라밀(육바라밀에다 방편方便, 원願, 역力, 지智를 추가)을 실천한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스리랑카와 같은 남방불교는 소승불교로 규정하지만 실제로는 그들도 사회공동체 구제활동을 활발히 전개해 나가는 것을 보면 소승불교로만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특히 와치싸라 스님을 보면서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됐다. 스리랑카는 전체 인구의 60%가 불교신자이다.

조계사 부설 이주민쉼터 마하보디사와 와치싸라 스님    

“마하보디사의 지난 10년이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이었다면 앞으로 10년은 국경을 넘어 세계인 모두가 부처님 제자로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경기도 양주 마하보디사는 2015년 8월9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마하보디사 창립 10주년 기념법회’를 봉행했다. 마하보디사 주지 와치싸라 스님은 지난 10년을 축하하고 새로운 10년을 계획하며 국가를 초월해 이주민들과 한국인들이 함께 모여 부처님 법으로 살아가는 마을이 만들어지길 발원했다.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정착을 돕고 한국과 스리랑카 불교의 가교역할을 해온 와치싸라 스님은 이날 법회에서 한국에서의 생활을 회상했다. 와치싸라 스님은 “처음 김포의 한 여관방에서 30여명과 함께 했던 법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며 “한국스님들과 신도들의 관심 덕분에 2년 만에 법당을 만들고 10년을 이어올 수 있었고 지금 이곳 양주에 정착해 있다. 특히 처음 저를 한국에 초대해준 도윤 스님과 마하보디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계신 조계사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국경, 종단, 승가를 넘어 지혜로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다문화 마을을 만들고 싶다”며 “부처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며 서로의 문화를 배워가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와치싸라 스님은 지금부터 15년전 성지순례 길에 한국을 찾았다가 우연히 조계사 앞에서 스리랑카 이주민을 만난 후 한국에 머물기로 결심했다. 임금 연체, 악덕 업주 사이에 생겨나는 불미스러운 일 등 그들의 고된 삶을 듣고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네팔의 스리랑카 사찰 주지로 발령이 난 상태였지만 포기했다. 이후 경기도 안산, 의정부, 김포 등 어디에서든 스리랑카인(人)들을 위한 법회를 열고 쉼터를 제공하는 등 이주민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 경기도 양주 마하보디사(주지 와치싸라 스님)는 2015년 8월9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마하보디사 창립 10주년 기념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법회에는 마하보디사 주지 와치싸라 스님(맨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을 비롯해 조계사 주지 원명 스님, 스리랑카 스님과 신도 후원회 등 사부대중 200여명이 참석했다     

스님은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든 곳도 하루 수십km를 걸어 어디든 달려갔다. 자동차가 생긴 후에는 더 바삐 움직였다. 5년 동안 60만km를 달렸다. 폐차할 때는 엔진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닳아있었다.

도윤 스님은 “안산에서 월세로 시작한 조그마한 법당이 이제는 조금씩 자리를 잡는 것 같아 기쁘다”며 “12년 동안 한결같이 성실한 자세로 한국과 스리랑카 양국의 불교문화 교류에 앞장서온 와치싸라 스님의 자비심을 찬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마하보디사의 지난 10년보다 앞으로 10년이 더 기대된다”며 불자들의 기대와 관심을 부탁했다.

조계사 주지 원명 스님은 “조계사는 앞으로도 마하보디사가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이주민들이 신행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이어 가겠다”고 약속했다.
양주 마하보디사: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화합로 81번길 81.  031-873-4116    
  
와치싸라 “부지런히 하루하루 살고 부처님께 예불드리는 것이 가장 값진 일”    

“스드웰라 지역은 스리랑카 내전 때 북쪽 지역에서 피난 왔던 주민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해방촌쯤으로 달동네 빈민가지요. 생활도 열악할 뿐 아니라 교육의 기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어 제가 유치원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중고 물품들을 지원받아 아이들에게 나눠주어 그럭저럭 꾸려가고 있지만 아직 유치원 건물 공사도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와치싸라 스님은 2017년 2월 스리랑카의 유치원을 찾은 한국 기자들에게 말했다. 와치싸라 스님은 경기 양주시에 스리랑카 이주민들을 위한 마하보디사를 운영하면서 15년 전부터 이곳 스리랑카 빈민촌의 어린이들을 위한 유치원을 만들어 어린이 교육을 돕고 있다.

유치원이 있는 스드웰라 지역은 콜롬보에서 남쪽으로 40여km 떨어진 곳으로 스리랑카가 영국으로부터 1948년 독립된 이래 북부의 타밀족과의 30년 내전 때 북쪽에서 피난 온 주민들의 집단 거주지다. 
▲ 스리랑카 마하보디사(寺) 유치원 어린이들이 각자 싸온 도시락을 먹고 있다     

“하루속히 건물 공사를 마무리하여 이곳에서 초등학교 과정의 어린이들 교육을 하고 싶습니다. 이곳 아이들은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기에 계속해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거든요.”

와치싸라 스님은 “스리랑카에는 의무교육이 없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스리랑카 정부의 재정이 열악하여 아직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무교육은 없다고 말했다. 피난민들의 삶이 열악하다 보니 현지 주민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어 아이들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와치싸라 스님은 피난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2002년(2009년에 내전 종식)이후 마하보디사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허름한 땅 1,500평을 마련하였다.

그리고는 겨우 비(雨)만 피할 정도의 허름한 법당을 마련하고 상좌 교육을 시키기 시작하였다. 유치원 건물을 지어 2012년부터 주변 지역의 어린이들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했다.

“저의 집은 13형제가 있는데 저는 그 가운데 12번째입니다. 아버지가 3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 손에 어렵게 자랐지요. 그래서 남달리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22년 전 인도네시아 앞바다의 거대한 지진해일(쓰나미)이 몰아닥쳤을 때 이곳 골(Dutch Fort at Galle)해변에서도 수천 명이 죽고 건물이 파괴되어 고아가 수백 명 생겼습니다. 그때 저는 대학원 공부를 위해 인도 유학 중이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달려와 고아 400여명을 거두며 교육을 시킨 적이 있습니다.” 
▲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두명의 유치원 선생과 와치싸라 스님    

와치싸라 스님이 유치원을 비롯해 어린이 교육에 신경을 쓰는 까닭을 알 수 있다. 그래도 한국에 와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보살피면서 본국의 유치원을 운영하는 일이 힘들 것 같아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스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짐승이라면 몰라도 인간이라면 헐벗고 가난한 이들을 보고 외면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혼자서 수행의 길을 걸으면 그뿐이겠지만 저는 제 주변의 어렵고 불쌍한 이웃들의 삶이 곧 나의 삶이라는 생각에서 힘들지만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지나간 과거도 다가올 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지금에 충실한 것이 가장 바른 삶이지요.”

와치싸라 스님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2017년 2월4일 일요일 오전 8시, 마하보디사 작은 법당에는 흰옷으로 곱게 차려입은 어린이 20여명이 모여서 모처럼 고국을 찾은 와치싸라 스님의 일요법회에 참석하였다. 스님이 한국에 있을 때에는 상좌들이 법회를 연다고 했다. 스리랑카 말로 불경(佛經) 독경과 법회는 약 30여분 동안 이어졌다.
▲ 와치싸라 스님이 어린이 법회를 열고 있다     

와치싸라 스님에게 “어린이들에게 하신 법회 내용”을 물었더니, “부지런히 하루하루를 살고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공양 올리는 일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임을 잊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스리랑카는 불교국가이지만 이곳 빈민가에도 교회가 들어서는 등 점차 “불교의 위기”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네덜란드, 포르투칼, 영국의 식민지 500년과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이후 인도 타밀족과의 내전 30년 등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도 굳건히 오늘의 스리랑카를 지켜온 힘은 “부처님의 가피”로 여기고 특히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을 끌어안고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는 와치싸라 스님의 “불교관”은 30여분 동안 어린이 법회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듯 했다.

한국에는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4만명 가량 있다고 했다. 이들을 위해서도 물심양면으로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와치싸라 스님은 몸은 하나이지만 마음은 이미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처럼 한국과 스리랑카를 넘나들면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한 ‘또 하나의 부처’ 같이 여겨졌다.

세계 불교를 리드하는 스리랑카불교

유엔 웨삭의 날 국제총회가 2017년 5월12일부터 14일까지 스리랑카 콜롬보와 캔디에서 72개국 1,000여명의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됐다. 한국불교에서는 통도사 방장 지종 원명대종사를 비롯해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정문스님 전 총무원장 의현스님 표충사 주지 법기스님 대구 불광사 회주 사요스님 대웅사 현장스님 및 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이치란 박사 등 1백여 명이 참가했다.    

유엔 웨삭의 날 국제총회는 2017년 제14차였다. 웨삭(Vesak)은 부처님의 탄생 성도(成道) 열반을 동시에 기리는 불교의 최대 명절이면서 가장 중요한 행사이다. 웨삭에 대한 공식 용어는 빨리어로 웨사카(Vesākha)라고 하며, 산스크리트어로는 와이사카(Vaiśākha)라고 부른다. 
▲ 2017년 5월12일부터 14일까지 열린 제 14차 유엔웨삭의 날 국제대회에 함가한 외국의 비구들과 재가자들이 란다 리나이케 국제기념 컨퍼런스홀을 가득 메우고 있다.     © 매일종교신문

또한 붓다 푸니마(부처님의 날)라고도 하는데, 나라마다 봉축행사 일정이 다르기도 하다. 2000년 유엔총회 결의로 웨삭(웨사카)의 국제총회 날을 제정하여 봉축하도록 해서, 2001년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개최된 바 있다.

세계 불교에서 영어라는 국제어의 마력 때문에 태국불교는 지도력과 조직력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스리랑카 불교가 뒤에서 일정부분 뒷받침해주고 있다. 태국에서 웨삭의 날 행사가 열려도 스리랑카에서는 대통령이나 총리가 참석할 정도로 적극적인 참여를 해왔다. 2017년 제14차 유엔웨삭의 날 국제총회는 스리랑카 정부의 재정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대회를 유치해서 국제총회를 비교적 잘 소화했다는 평가다.

유엔웨삭의 날 국제총회의 주제는 ‘사회정의와 지속적인 세계평화를 위한 부처님의 가르침’이었는데, 다소 추상적인 주제이긴 했지만 그런대로 주제에 부응하는 여러 앵글에서 주제발표와 토론이 진지하게 진행됐다. 아마도 현재 세계불교기구 가운데에선 유엔웨삭의 날 기념국제대회가 가장 규모도 클 뿐 아니라 참여하는 학자나 지도자들의 비중이 크다고 할 것이다. 스리랑카가 영국식민지를 겪은 나라이기에 영어에 대한 통용이 자유롭고 스리랑카 관계자들의 영어 소통 또한 불편함이 없었다, 게다가 인도 모디 총리는 원고 없이 즉석 영어연설이 뛰어났고, 그의 불교 인식에 대한 지평이 깊고 넓었다는 평가였다.

불교 발상지의 나라였지만, 인도의 원형불교에 대한 전통과 유산을 지금은 그 주도권과 발언권을 스리랑카에 내어준 상황에서도 모디 인도 총리는 전세계 불교지도자급 고승과 재가 지도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참석자들은 매우 고무적인 인상을 받았으며, 총리의 불교유적 보호와 불교도 저변확대에 정책적 배려를 하겠다는 의지에 박수를 보냈다. 스리랑카에서는 비단 불교라는 관점에서만이 아닌, 정치·경제적 측면에서도 인도에 의존해야하는 입장이어서 모디 총리에 대한 예우는 초특급 국빈대우였다.  
▲ 반다라 네팔 대통령이 시리세나 스리랑카 대통령(오른쪽)에게 선물을 건네주고 있다.    

제14차 유엔웨삭의 날 행사 일정은 5월11일부터 시작되었다. 각국 대표들은 등록을 마치고 힐튼 호텔의 환영만찬에 참석해서 국회의장의 환영사와 함께 상견례로부터 시작되었다.

스리랑카는 불교부 장관 제도가 있어서, 이 행사의 조직위원장은 위제야다사 라자팍세 불교부 장관이 맡았고, 공식적인 환영사를 했다. 다음은 유엔 웨삭 국제 위원장인 태국 MCU 총장 프라 브라마하 푼딧트 스님의 인사말씀이 있었다. 이어 스리랑카 라닐위크레마싱헤 총리의 인사말씀이 이어졌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기조연설이 있었다. 이어서 스리랑카 시리세나 대통령의 인사말씀으로 대회는 최고 절정을 이룬 가운데 오전 회의가 거의 채워졌다. 오후에는 각국 지도자들의 친선 메시지 낭독이 있었다. 한국불교에서는 자승 총무원장의 메시지를 사회부장 정문 스님이 대독했다. 저녁에는 웨삭 문화축전(디야타 우야나)이 다채롭게 개최되었다. 한국불교대표단은 나가난다 국제 불교대학 봉축법회에도 참석해서 영축산 통도사 방장 지종원명 대종사와 전 총무원장 의현 스님이 법어와 축사를 했다. 13일에는 주제발표와 분과별 토론이 있었으며, 저녁에는 문화대공연이 있었고, 14일에는 캔디로 장소를 옮겨서 불치(佛齒) 친견과 폐회식과 2000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페라헤라 행진을 관람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문윤홍·시사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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