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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수행’ 환산 스님이 테오도르 준 박으로 되돌아온 까닭은?
‘자유’ 찾아 하버드대 명성도, 승복도 벗어…환속 후 에세이 『참선』 출간한 테오도르 준 박
기사입력: 2020/03/25 [21:04]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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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찾아 하버드대 명성도, 승복도 벗어환속 후 에세이 참선출간한 테오도르 준 박 

 

스물둘의 테오도르 준 박은 인생에 대한 고민으로 힘든 청춘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그저 물질적인 유기체일 뿐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라는 인생의 근본적 물음은 내내 그를 괴롭혔다. 이 궁금증의 해답을 찾고 싶었던 그는 “10년간 묵언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은 스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끌리듯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마침내 송담 스님과 처음 마주한 자리, “묵언수행 끝에 무엇을 깨달으셨냐?”는 그의 질문에 스님이 답한다. “내가 알게 된 것은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진심을 다해 참선한다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 명문인 미국 하버드대학교를 나와 한국에서 30년간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수행한 한 옛승려 환산 스늼의 얘기다. 1987깨달은 선각자로 소문난 인천 용화선원(龍華禪院)의 송담(松潭, 1927~) 스님을 찾아온 그는 22살의 청년이었다. 재미동포였지만 한국말을 전혀 못했고 귀걸이를 한 차림이었다. 하지만 그는 새벽 3시부터 밤 10시까지 용화선원의 힘겨운 행자와 사미 과정(출가 수행자의 길을 서원하는 조계종의 예비과정)을 버텨내고 스님이 됐다. 시자로서 15년간 송담 스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셨던 그는 2년 전 돌연 환속해 자취를 감췄다.

 

그러던 그가 최근 2권짜리 에세이집 참선(나무의마음 펴냄)을 출간했다. ‘환산 스님이라는 법명 대신 테오도르 준 박(55)이라는 옛 속명으로 펴냈다. 지금은 머리도 기르고, 캐주얼복을 입고 있다. 승복을 벗기 전만 해도 그의 법명은 환산 스님이었다. 재미교포인 그는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머리를 깎고 송담 스님의 제자가 됐다. 송담 스님 역시 그를 각별히 여긴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던 그가 2년 전에 승복을 벗고 돌연 환속했다. 왜 그랬을까  

▲ 환산 스님 30년 만에 본명을 되찾은 테오도르 준 박이 승복을 벗고 속세로 돌아와 책 『참선』을 출간했다.    

 

환산 스님이 승복 벗고 속세로 되돌아온 이유는?  

 

스님으로 있을 때 테오도르 준 박은 내가 사는 모습이 진실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진실하지 않다는 게 무슨 뜻일까. 그는 성직자의 혜택이 뭔가. 세금 안 내고, 공짜로 먹고 자고, 모든 걸 받으며 산다. 나도 그걸 당연시했다. 그런데 너무 가식적으로 변하고 있는 나 자신이 보이더라. 내가 가르치는 것을 정말 내 깊은 마음속에서, 나의 인생에서 실천하고 있는가. 떠들기만 하고 사는 것은 아닌가. 내가 정말 싯다르타의 정신대로 살고 있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대로 가다가는 제일 잘 복종하는 제자가 될 것 같았다. 여기서 치고 나가지 않으면 영원히 이 안에 갇히겠다 싶었다고 한다. 생각이 이에 이르자 마침내 결단하게 된다.

 

그는 그걸 인식하는 순간,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과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에게 그것은 악몽이다. 나는 참선을 믿지 못해서 떠난 게 아니다. 참선을 믿기 때문에 떠났다. 스승을 못 믿어서 떠난 게 아니다. 스승을 믿기에 떠났다고 밝혔다.

 

출가 당시에는 22살이었다. 지금은 한국말이 상당히 유창하다. 그때에는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층층시하 엄격한 절집 문화가 그에게는 큰 부담이었을 터다. 그럼에도 그는 무려 30년 세월을 송담 스님 아래에서 출가자로 살았다. “어느새 복종하는 마음이 내게 배이더라. 새로운 걸 개발하고, 실험하고, 시도하는 것보다 순종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더라. 그게 습관이 되고, 나는 그 습관의 노예가 되어 있더라. 그래서 승복을 벗었다고 했다.

 

수행의 포기가 아니라 터득한 선() 수행의 알갱이를 공유하길 원해

 

승복을 벗겠다고 했을 때 스승 송담 스님은 뭐라고 했을까. 테오도르 준 박은 “‘하루빨리 돌아오너라!’ 스승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저 합장했다.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나가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선()수행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터득한 선 수행의 알갱이를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보다 쉽게, 보다 친근하게, 보다 자세하게, 보다 과학적으로, 보다 현대적으로 나누려고 한다. 테오도르 준 박은 굳이 승복을 입지 않아도 괜찮지 않나. 굳이 머리를 깎지 않아도 상관없지 않나. 나 자신을 더 이상 선생이나 전문가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가 가진 것을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할 뿐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수년 전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의 초청으로 선 명상을 주제로 강연했다. 당시 강당에는 100명 정도가 모였다. 대부분 20대와 30, 젊은 미국인들이었다. “미국 인구는 3억 명이다. 그중 1억 명이 명상을 체험한 적이 있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종교적인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활에 적용하는 명상 방식을 선호한다고 강조했다.  

 

그때 페이스북 본사에 모인 청중은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은 명상에서 무엇을 기대했을까. 그는 청중은 주로 프로그래머와 신제품 개발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해결(problem solution) 능력을 키우고 싶어 했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초월할 수 있는 탁월한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고 싶어 했다. 그들은 주류 과학을 믿는 사람들이다. 한국 불교에서 말하는 영가(靈駕)나 불성(佛性)은 안 믿는다. 그런데도 한국 불교의 참선 수행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놀랍다고 했다그 이유가 뭘까. 그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들이 믿는 사상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려고 했다. 그래야 자기가 무의식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선입견을 물리칠 수 있다고 했다. 그게 정말 인상적이었다. 페이스북 본사에는 명상을 할 수 있는 작은 선방도 있었다.”

 

미국인이 한국 불교의 참선 수행에 기대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고 했다. “미국인은 뭘 믿고 싶어 하는 게 아니다. 뭔가 직접 느끼고 경험하고 싶어한다. ()에 끌린다는 것은 내 몸과 내 마음으로 느끼고 싶다는 말이다. 나와 진리, 그 사이에 중개인이 끼어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중간에 스승이 있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내가 신()과 직접 만나고 싶은 것이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스님이 말하는 걸 내가 직접 맛보고 싶은 것이다.” 그는 “20세기가 원자의 시대, 유전자의 시대라면, 21세기는 의식의 시대, 내면의 시대’”라고 했다. 참선은 우리 내면의 무한한 잠재력을 깨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환속 후 2년간 잠적30년간 터득한 참선의 노하우 담긴 참선책 집필

 

환속한 뒤 2년간 그는 잠적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홀로 시간을 보냈다. 최근에 모습을 보인 그는 참선이란 제목의 두툼한 책 2권을 출간했다. ‘참선을 무기로 대중과 소통하기 시작한 셈이다. 책에는 출가 30년간 그가 몸소 겪고 터득한 참선의 노하우가 오롯이 담겨 있다. 그의 책 참선은 놀랄 만큼 세심한 관찰과 감정 표현, 솔직함으로 가득하다. 선원(禪院) 시절 그는 되도록 숨고 싶어 하는 은둔형 스승과 어떻게 해서든 그 은둔자를 만나보려는 대중들 사이에서 철저히 스승을 방어하고자 했다. 이 때문에 그가 대중은 물론 다른 상좌(제자)들과의 접촉을 막고,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눈총도 쏠렸다.

 

 

어쨌든 그는 이제 자신의 첫 단추로 돌아간 셈이다. 처음 불교를 알고자 했던, 처음에 머리를 깎고자 했던 그때의 마음으로 말이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았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우리는 몸과 피가 한국인인데, 왜 미국에 와서 사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한국전쟁 때문에 사회가 무너져서 그랬다. 보다 행복한 삶을 찾기 위해 이민을 왔다고 답했다. 그 말에 어린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 그가 왜 철학과를 지망했을까. 부모님은 의사나 로펌의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다. 철학과 지망에 대해 불평은 하셨지만 반대는 안했다고 한다. 그는 불교와 도교, 힌두교 등을 철학과에서 다루는 줄 알았다. 가서 보니 아니더라. 비교종교학과에서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 전공을 비교종교학으로 바꾸었다. 기독교와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도교, 유교 등 세계의 각 종교를 한 바퀴 훑었다. 거기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 공통점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나무가 한 그루 있다. 10명의 화가에게 그것을 그리게 했다. 화가들은 자라난 역사적·인종적·문화적 배경이 다 다르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같은 나무를 그려도 모두 다른 그림이 나온다. 하나의 나무를 보고 그려도 피카소와 고흐, 미켈란젤로, 동양산수화의 그림이 다 다르듯이 말이다. 그런데 실제 그 나무를 본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종교시스템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늘 회의하고 의심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뉴욕의 로펌에 입사했다. 로펌을 다니면 로스쿨 진학도 쉽다. 로스쿨에 다니면서 입사한 로펌에서 인턴을 해도 된다. 그러니까 성공을 향한 첫걸음을 제대로 뗀 셈이었다. 그런데 그는 로펌에 사표를 냈다로펌에서 일하며 느낀 것은 지루함이었다. 회사들이 서로 소송할 때 온갖 증언과 기록들이 나온다. 그걸 받아쓰는 일을 했다. 몇 시에 누구랑 전화하고 누가 서명을 했으며 몇 시에 복사를 했는지 등 그런 일을 하면서 그는 “‘나는 이 일을 평생 동안 못 하겠다싶더라. 로펌에서 일하는 윗사람들은 돈을 엄청나게 잘 버는 변호사들이었다. 그런데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눈에는 돈 잘 버는 변호사들이 짜증을 잘 내고, 불안해 보였다. 재미삼아 서로 비꼬고 꼬집고 괴롭혔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 너덧 살쯤 됐다. 앞날이 창창한 그는 이 때문에 크게 고민하게 됐다. 이 길로 쭉 가면 어떻게 될까. 나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 물질적인 것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걸 취득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로펌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곧바로 출가를 결심했다

▲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한 테오도르 준 박은 한국 선불교 78대 법손인 송담 스님(맨 앞)에게 출가해 1990년 환산 스님 사미계를 받았다  

 

그는 수소문 끝에 당대의 선지식이라는 송담 스님을 찾아가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그리고 이 뭣고?’(이것이 무엇인가)란 화두를 품고서 간화선 수행을 했다. 출가 후 14년이 됐을 때 송담 스님의 시자가 됐다. 그때부터 15년간 송담 스님을 곁에서 모셨다.

 

왜 그토록 유망한 젊은이가 먼 나라의 사찰에서 그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감내했을까. 그는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속의 부()와 권력의 불빛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정신적 방황을 완전히 끝낼 깨달음이 절박했다는 것이다. 그는 송담 스님을 깨달은 스승으로 확신해 찾아갔고, 만약 그가 목사였다면 목사가 됐고, 신부였다면 신부가 됐고, 화가였다면 나도 화가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불교에 귀의한 것이 아니라 송담 스님에게 귀의했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다해 송담 스님에게 복종하고 충성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스승이 내려준 이 뭣고?’란 화두를 의심하는 선() 수행자였다. 그가 의심한 것은 화두만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나라의 토속적인 승려들 못지않게 전통적인 스승과 사제의 연()을 중시하며 살아왔지만, 영민한 엘리트 출신답게 종교시스템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늘 회의하고 의심했다

 

나는 구도자였을까, 송담 스님 추종자일까

 

참선에는 나는 구도자였을까, 송담 스님의 추종자에 불과했을까’, 환속의 동기가 얼핏 엿보이는 대목이 있다. ‘성인이 된 후로 줄곧 엉뚱한 곳을 들여다보고 잘못된 기준과 관점에 연연해왔다는 것을. 더 나은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하다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땅 속에서 금을 찾다가 결국 그 땅을 놓쳐버린 꼴이다.’

 

그럼에도 테오도르 준 박은 여전히 스승에 대한 믿음과 참선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책에는 스트레스와 상처투성이인 현대인에게 참선이 얼마나 절실한지에 대한 설명도 구구절절하다. 하버드대 친구들로 책의 추천사를 써준, 그에게 참선을 배우기도 했던 김용 세계은행 전 총재나 세바스찬 승(한국명 승현준) 프린스턴대 교수(신경과학연구소)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처지다. 그런 세간의 출세는커녕 이제 승려조차 아닌 무직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행 중이다. 인도와 발리 등에서 요가와 호흡법도 배웠다. 최근에는 남미 코스타리카를 다녀왔다. 그곳의 샤먼들을 만났다.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22살 청년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 그는 다시 송담 스님에게 갈 것이라고 했다. 의외였다. 30년의 삶이 헛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자신의 삶에서 반드시 필요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승복이 주는 권위는 대단하다. 그는 30년간 쌓아온 권위와 기득권을 버린 것이다. BTN불교TV에서 5년간 참선 강의 방송을 하고, 고대·동국대·서울대·연대 등에서 가르치며, 용화선원 신도들로부터 큰절을 받던 스님이 더는 아닌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명성이나 권력은 마약과 같고, 세상에 마약을 거부하는 유전자 같은 것은 없다. 어떤 사람이든 충분히 오래 즐기면 중독되고 만다. 여성과 돈, 권력에 깊이 빠지면 중독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참선의 궁극적인 목적은 파괴적인 습관, 즉 중독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것이 해탈이다.

▲ 환산 스님 시절 2013년부터 송담 스님에게 전수받은 전통선법(활구참선법)을 일반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불교TV 등 방송에서 강의와 대중법회를 했다.    

 

출가를 주저하는 그에게 출가를 권하며 환산(還山·산으로 돌아오라)이란 법명을 붙여준 스승을 떠나 이제 그는 추운 광야로 나섰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결별이다. 참선보다 더 한 구도행을 시작한 것이다. 승복 입은 수행자에서 승복 벗은 수행자가 됐다. 환산 스님은 이제 테오도르 준 박이 됐다. 그는 유투브에서 직장인들이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참선법등도 소개한다. 앞으로 그가 종교적인 틀과 문법, 제도와 문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갈 마음공부는 어떤 것일까. 벌써 그것이 궁금해진다. 

 

참선은 마음을 이끄는 기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미국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공통점은?

 

질문의 취지가 애매모호하기도 한 이런 물음이 주어진다면 답을 찾기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참선)’이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지난 200791차 집권에서 실각한 아베 총리는 도쿄(東京)의 한 선원인 젠쇼암(全生庵)’을 오가며 참선에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잡스는 애플을 설립하기 전에 히피 생활을 하다 선불교를 접했으며 불교 승려가 되려고도 했지만, “사업과 구도(求道)는 본질적으로 같다는 영적 스승의 조언에 따라 애플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결국 아베 총리는 2차 집권에 성공해 승승장구하고 있으며, 잡스가 세운 애플은 전세계 정보기술(IT) 업계를 주무르고 있다.

▲ 아베신조 일본 총리와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마이니치신문은 좌선은 조신(調身), 조식(調息), 조심(調心)을 기본으로 해 잡념을 떨치게 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다난(多難)한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혜 주머니라는 점이 많은 사람을 참선으로 이끄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고 전했다.

 

 

최근 일본에서는 유명 인사들을 비롯해 각계각층에서 참선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영 컨설팅업체 시마즈의 대표 시마즈 기요히코(島津淸彦)는 마이니치신문에 저명한 경영자들에 대해 조사해 보면 모두 선이란 결론에 이르게 된다스트레스 투성이인 비즈니스맨의 고뇌를 해결해 주는 힌트가 선에는 확실히 있다고 말했다. 이에 시마즈는 2015년 여름부터 좌선과 선어(禪語·선종에서 쓰이는 독특한 용어) 해설을 가미한 기업 연수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1년 사이 대기업과 관청 등 16개 기관이 이런 기업연수를 요청했다. 대학에서도 참선의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일본의 유명 사립대 니혼(日本)대는 20164월 신설한 위기관리학부에 좌선(坐禪) 강좌를 개설했다. 학내에 전용 좌선실을 만들고 이 학부의 신입생은 원칙적으로 월 190분의 좌선 강좌를 수강하도록 했다. 대학 측 관계자는 재해나 테러가 눈앞에서 발생하면 지식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냉정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인격을 형성하는 데는 좌선이 좋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선종은 최초의 무사 정권인 가마쿠라(鎌倉)막부 시기(11921333)에 불교의 한 종파로 전래됐다. 그로부터 800여 년이 지난 현대의 일본인들이 현대사회의 불안과 스트레스 등에 대한 대처법으로 참선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참선은 불교의 수행법 정도로 일반에 알려져 있는데 참선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마음이 속상한 순간, 조금도 기다릴 필요 없이 즉시 대처해 맑은 정신을 되찾을 수 있게 해주는 실용적인 방법이다. 참선(參禪)은 종교적인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이끌 수 있게 하는 하나의 기술이다. 참선을 하면 내면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에 관해 테오도르 준 박은 저서 참선 1에서 괴로움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참선할 필요가 없다. 내가 알기로 여러 가지 명상법 중에 이런 장점을 가진 건 참선뿐이다(246)’라고 썼다.

 

그러면 일반적인 명상과 참선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는 다른 명상법들은 가 아닌 것을 관심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림, 촛불, 소리, 호흡 등이다. 하지만 참선은 관찰자를 관찰의 대상으로 삼는다. 즉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는 것이고, 조금만 연습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바로 적용할 수 있다. 보통 명상이라고 하면 어떤 상황에서 탈출하고 벗어난다고 생각하는데, 참선은 그 상황에 더 집중하여 극복할 수 있게 만든다. 특별히 시간을 내서 하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하는 것이다나는 7년 전부터 줄곧 바쁘게 지냈다. 일주일에 한 번은 포교를 위한 방송 촬영을 했고, 세 군데의 대학에서 지도법사를 했다. 주말에는 청년 참선법회 모임이 있었고, 송담 큰 스님의 시자역할도 수행했다. 매일 멀티태스킹하는 상황이었다. 선방에 가만히 앉아서 참선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운전하면서 참선하고, 연설하면서 참선하고, 지하철에서 참선했다. 실시간으로 참선을 할 수 있다는 걸 그때 확인했다고 밝혔다

 

 

참선에서 이뭣고?”라는 화두 들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뭣고?”란 무엇이며 왜 중요한 것일까? “이뭣고?”라는 세 글자는 참선의 마음 상태로 들어가게끔 하는 장치다. “이뭣고?”를 내뱉음으로 인해 마음의 시선을 내면으로 돌릴 수 있고, 관심을 마음의 근원으로 돌릴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의심이 일어난다. 알고 싶은데 알 수 없고,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는 상태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마음이 막힌 것인데, 그 의심을 일으키고 관조(觀照)하면서 유지하는 게 참선의 핵심이다. “이뭣고?”는 그 모든 걸 일으키고 유지하는 장치이기에 중요한 것이다.

 

 

환산 스님으로 있을 때 그가 경험한 일이다. 환속하기 몇 년 전, 페이스북에서 초청을 받아 참선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다.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신제품 개발자들이었다. 워크숍이 끝나고 대화를 나누는데 그들은 그를 종교인이 아닌 기술자로 봐주었다.

 

마음을 다스리는 기술을 가진 전문가라는 것이었다. , 종교적인 관점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점을 뛰어넘기 위해 참선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들의 목표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초월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다. 그걸 가장 방해하는 장애물은 자신의 생각과 믿음, 고정관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사상과 맞지 않는, 그러면서도 힘이 있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배우고 싶어 한다. 의식의 영역을 넓히는 방법을 항상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런 뜻 깊은 목적을 가지고 참선을 배우고 싶어 하고, 참선을 정신적인 과학이자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한다

 

명상이 떠오르는 시대다. 그러면 명상이 왜 현대인들에게 주목받고 있을까. 요즘은 업무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감당하지 못할 양의 정보가 순식간에 쏟아진다. 그 속도에 압도되는 것 같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견디거나 극복하지 못하면서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이 늘고, 임상적으로 어떤 진단을 받지 않더라도 느낌상 힘들다고 알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마음을 달래야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늘 긴장되고 수시로 아프다. 그러다 보니 정신적인 힘을 키우는 방법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높아지는 것 같다. 지난 20년간 명상이 주류 문화에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경우, 과거에는 히피족이나 극소수의 예술가, 철학자만 명상을 했으나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명상을 알고 있고 실생활에 적용한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불교가 자리 잡고 있으니 멀리 가서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

 

참선이 필요한 순간은 마음이 힘들 때다. 그렇지만 괴로운 생각이 들 때는 집중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보통 참선을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는 분들은 삶이 너무 불행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다. 그들 중에 지나치게 자책하는 성격을 가진 이들이 있다. 성공이나 실패에 크게 연연하며 왜 나는 참선이 잘 안 되냐고 묻는 경우가 많은데, 참선은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잘할 순 없다. 어린 아이를 대하듯 어르고 달래가며 익혀야 한다. 잡념이 일어나고 자세가 불편하고 호흡이 안 되는 건 당연하다. 부처님도 처음에는 부처님처럼 참선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초심자는 참선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참선이다. 일단 하려는 노력이 잘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속 해보길 바란다. 참선에는 성공이나 실패가 없다고 조언했다.

 

참선을 오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도 다스리기 힘든 감정이 있을까. 테오도르 준 박은 너무 많다. 왜 참선을 배우려고 했겠나. 남들보다 성격이 안 좋으니까 그런 것이다. 여전히 화를 내고 뜻대로 안되면 속상하고 남 탓하고 질투한다. 누구나 그런 생각이 일어날 수 있지만 참선을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그런 마음이 일어났을 때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느냐에 있다. 부정적인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생각이 자꾸 든다고 해서 성격이나 인격이 나쁜 사람인 건 아니다. 다만 이걸 다스리는 방법을 교육받을 기회가 있었나, 얼마만큼 연습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라고 했다

 

초보자가 일상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활구참선법

 

학교, 직장, 심지어 대중교통 안에서도 참선을 할 수 있다.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괴로운 순간, 그 자리에서 곧장 다음의 방법을 따라하면 된다.

 

자세

- 먼저 의자에 앉아 있다면 상체를 등받이에 기대지 말고 의자 좌석 중앙에 엉덩이를 대고 허리를 곧게 편다.

- 두 발은 바닥에 붙이고 무릎이 직각이 되게 한 뒤, 다리를 골반 넓이로 벌린 다음 몸이 의자가 된 듯 발목과 무릎, 무릎과 상체가 모두 수직이 되게 한다.

- 등을 곧게 펴고 앉은 뒤 양쪽 어깨를 귀까지 바짝 들어올렸다가 툭 떨어뜨린다. 이때 턱을 살짝 당겨 정수리가 천장을 향하게 하면 척추가 곧게 펴진다.

- 오른손을 펴서 손바닥 가장자리를 아랫배(단전)에 대고 그대로 편안하게 넓적다리 위로 내린 뒤, 그 위에 왼손을 얹고 양쪽 엄지를 맞대 둥근 무지개 모양을 만든다.

- 눈은 감지 말고 편안하게 뜬 상태로 정면을 바라보면, 턱을 당겼기 때문에 시선이 전방 2,3미터 바닥을 향할 것이다.

- 혀끝을 윗니 뒤쪽 입천장에 살짝 대고 몸의 긴장을 푼다.

 

 

호흡

- 자세가 편안해지면 복식호흡을 시작한다. 먼저 2, 3초간 길고 부드럽게 코로 숨을 들이쉰다.

- 코로 숨을 들이쉴 때 마치 공기가 배에 채워지는 것처럼 아랫배를 부드럽게 내밀어보자. 이때 들이쉬는 공기가 배꼽에서 6센티미터쯤 아래 지점까지 쭉 내려간다고 상상해보자.

- 배에 공기가 80퍼센트쯤 채워졌다고 느껴지면 그 상태로 2,3초간 숨을 참다가, 숨을 들이실 때보다 더 길게(3, 4) 코로 숨을 내쉰다. 이때 아랫배를 안으로 끌어당긴다.

- 숨을 내쉴 땐 배꼽을 척추 쪽으로 끌어당겨 아랫배에 들어 있는 풍선의 바람이 빠져나간다고 상상해 보자.

 

이뭣고?” 화두 들기

- 바른 자세로 복식 호흡을 하면서 이뭣고?”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숨을 들이마시고 잠시 멈췄다가 내쉬면서 이뭣고?”하면 된다.

- 이때 이뭣고?”내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이것이 무엇인가?’ ‘내가 어떤 생각을 떠올릴 때 내 안의 또는 내 의식 속의 무엇이 그 생각을 만드는가?’ ‘생각을 만드는 이것은 무엇인가?’라는 뜻이다.

- “이뭣고?”를 할 때 마지막 음절인 를 숨이 다할 때까지 길게 끌어준다. 다시 한 번 숨을 들이마시고 잠시 멈췄다 내쉬며 이뭣고?” 한다.

- 이때 음절은 중요하지 않다. 질문을 던지는 순간 얼마나 간절하고 진실한 마음인가가 중요하다. 자신의 의식을 깨워 살아있는 질문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익숙해질 때까지 소리 내서 연습해보자.

-테오도르 준 박 지음 참선 1중에서   

 

참선 수행에 필요한 팁

 

수행하는데 알고 따라하면 유용한 여러 가지 팁이 있다.

 

편한 옷을 입는다. 예를 들어 청바지를 입은 채 앉고 하면 뻑뻑해서 매우 아프다.

 

아래 허리는 펴는 게 좋지만 너무 억지로 뻣뻣하게 펼 필요는 없다. 오랫동안 결가부좌로 앉아서 기혈이 잘 돌기 시작하면 스스로 펴진다.

 

참선하는 동안 되도록 움직이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처음 수련할 때 결가부좌가 너무 아프면 좀 움직이더라도 일단 다리를 풀지 않는다.

 

눈은 감아도 되고, 살짝 삼분의 일 정도 떠도 된다.

 

벽을 바라보고 앉으면 방해물이 줄어서 좋다.

 

되도록 외풍이 있는 곳은 피한다. 실내에서 하는 것이 좋다.

 

다리는 담요나 타올 등으로 항상 덮는 게 좋다. 찬바람이 무릎과 같은 관절에 침투하면 좋지 않다.

 

춥더라도 모자는 쓰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몸이 따뜻해 질 때까지 기다려 보라.

 

상체는 살짝 시원하게 두는 게 좋으니, 담요로 덮거나 두르지 않는 게 좋다. 대신 얇은 옷을 여러 겹 입는 게 좋다. 살짝 시원한 상태에서 좌선하는 것이 너무 따뜻한 것보다 좋다.

 

혀는 살짝 구부려서 입천장 (윗니 바로 뒤)에 두는 게 좋다. 이렇게 하면 기 순환이 되는 자오선을 완성해 준다.

 

입 속에 침이 고이면 삼키면 된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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