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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의 해인사 생활은 은거가 아닌 호국이었다"
10월7일 해인사 개산 1218주년 기념 ‘해인사와 최치원’ 주제 학술 세미나
기사입력: 2020/10/16 [21:11]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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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일 해인사 개산 1218주년 기념 해인사와 최치원주제 학술 세미나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은 정계를 떠나 해인사에서 여생을 보내며 화엄(華嚴)사상에 집중해 많은 학술 활동과 종교 활동을 펼쳤다. 이처럼 그가 해인사에서 보낸 삶은 은거가 아닌 궁극적으로는 구국(救國)과 호국(護國)의 수단이었다.”

 

해인총림(海印叢林) 해인사가 개산 1218주년을 맞아 신라말 대학자 최치원(崔致遠 857~?)이 가야산 일원에 남긴 발자취를 돌아보고 불교를 통해 구현하고자 한 호국의 가르침을 조명하는 학술 세미나를 마련했다. 해인사(주지 현응 스님)107일 경내 보경당에서 해인사 개산 1218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 해인사와 최치원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해인사가 최치원을 주제로 마련한 첫 학술 세미나였다. 특히 최치원의 글 해인사 선안주원벽기(海印寺 善安住院壁記)’에서 해인사 창건연대와 개산일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개산 1218주년을 맞아 세미나를 개최해 의미를 더했다. 경상남도와 합천군, 경주최씨중앙종친회, 경남대고운학연구소에서도 후원을 통해 세미나의 가치를 높였다

▲ 10월7일 경남 합천군 해인총림 해인사 보경당에서 해인사 개산 1218주년 기념행사로 ‘해인사와 최치원’ 주제의 학술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해인사 주지 현응, 전계사 무관, 성보박물관장 원학, 율주 경성, 다주 여연 스님을 비롯한 대덕 스님들과 최천규 경주최씨 중앙종친회 수석부회장 등 종친회 임원, 발제 및 토론자, 불자 등이 동참했다. 정부 및 조계종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참석 인원이 제안됐으며, 사회적 거리 두기 원칙을 준수하는 가운데 발제 및 토론이 전개됐다.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은 개회식 인사말에서 해인사는 창건 당시의 사정을 전하는 거의 모든 역사적 사실을 최치원 선생의 기록에 의지해 밝히고 있으며 이는 현재까지 해인사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이기도 하다개산 1218주년을 맞아 선생의 삶과 해인사의 인연을 조명하고 나아가 오늘을 사는 우리가 선생의 활동이 전하는 가르침을 경종으로 삼는 자리라고 취지를 밝혔다.

▲ 개회식에서 인사말을 전하는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

 

최천규 경주최씨 중앙종친회 수석부회장도 최효석 회장을 대신한 축사에서 최치원 선생이 해인사에 남긴 학문적, 정신적 유산을 재조명하고 역사적 가치를 새롭게 밝히기 위한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 큰 영광이라며 선생께서 말년에 머무시며 곳곳에 자취를 남기시고 저술하신 활동은 후대에도 깊은 가르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개회식에 이어 유권종 중앙대 교수의 사회로 본격적인 세미나가 진행됐다. 1발표와 제3발표는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교수가 해인사 기록자 최치원(해인사와 최치원의 인연)’, ‘최치원 가계(家系) 그리고 불교와의 인연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2발표는 김성환 군산대 교수가 최치원의 가야산 은둔, 그리고 승선(昇仙) 설화’, 4발표는 최유진 경남대 명예교수가 최치원의 불교관’, 5발표는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이 신라 말, 최치원이 차() 문화의 전파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최치원과 해인사의 인연, 정치·사회·문화적 영향과 시대적 가치를 조명했다. 토론에는 정은상 경남대 교수, 나우권 고려대 교수, 김정대, 김영주 경남대 명예교수, 김호귀 동국대 교수가 각각 맡았다. 종합토론의 총평은 최병주 고운국제교류사업회 위원장이 맡았다.  

 

결연한 의지로 입산한 최치원해인사 학사대에서 수행 결기

 

모든 것이 제 빛깔, 제 소리가 또렷하지만 높고 낮고, 크고 작음으로 서로를 가리지 않는다. 해인사는 그런 가야산(伽倻山) 자락에 신라 40대 애장왕(哀莊王: 재위 800~809) 3(802) 의상대사의 법손 순응과 이정 두 승려가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창건했다. 불가의 삼보(三寶)인 불((() 중 법보사찰인 해인사는 대승경전의 최고봉이라 일컫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에 나오는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그 이름을 얻었다.

 

고운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귀국한 후 바쁜 국사의 와중에도 몇 차례 해인사를 다녀갔다. 무엇보다 친형인 현준(賢俊)이 오래전부터 몸담고 있는 데다 그의 도반인 정현(定玄) 스님과도 더불어 도우(道友)가 되었으니 마음의 고향 같았다.

 

그렇게 고운 앞에는 일주문이 한참 남았는데 길 위쪽에서 산책하듯 소요하는 걸음으로 내려오는 승려 둘의 모습이 보인다. 같은 잿빛 승복에 모두가 그 사람이 그 사람인 듯싶은데 그들의 발걸음이 빨라지며 한 승려가 손을 들어 흔든다. “고운!” 정현의 목소리다.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되니 옆의 승려는 그가 형인 것도 알게 된다. 고운도 반갑게 손을 흔들며 걸음을 재촉한다.

 

누군가 올 것 같아 나왔는데 과연 고운 자네로군!”하면 덥석 고운의 두 손을 잡으며 정현이 반긴다. 고운은 손을 잡힌 채로 뒤쪽의 현준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다. “마중을 나오신 겁니까?” 현준은 양손을 합장하며 고개 숙인다. “그래, 세상은 좀 돌아보았는가. 어떻던가?” “한때 관리였다는 것이 부끄럽고 죄스러웠습니다. 백성의 삶이 너무 피폐하고, 무엇보다 어떤 희망도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현준은 한숨을 내쉬는데 정현은 혀를 찬다. “그러니 조정에서 버틸 것이지 산문(山門)에는 왜 들어. , 다시 나가면 되는 일이니 일단 좀 쉬며 생각을 다듬게.”  

▲ 신라시대 대학자이자 문장가 고운 최치원  

  

그러나 고운은 고개를 저으며 시() 한 수로 답을 대신한다.

 

저 중아 산이 좋다 말하지 말게 /좋다면서 왜 다시 산을 나오나 /저 뒷날 내 자취 두고 보게나 /한 번 들면 다시는 안 돌아오리.’

-노산 이은상 역.

 

증산승’(贈山僧·어느 산승에게)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입산시(入山詩)로도 불린다.

 

대적광전(옛 비로전)에 들어 배()를 올린 고운과 무영이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두 승려는 대적광전 바로 옆 작은 언덕 위로 오른다.

 

현준이 고운을 돌아보며 이곳에 자네를 위한 작은 정자를 지어 학사대(學士臺)’라 할 테니 공부처로 삼게한다. 고운은 옆 대적광전을 돌아보며 그리해도 되겠습니까물으니 현준은 가야산에 든 뜻은 불도를 공부하기 위함일 텐데 부처님도 반기시겠지한다.

 

암요, 우리도 같이 공부하면 서로 보완이 될 테지요.” 정현의 말에 고운은 주변을 돌아보다 서너 발짝 떨어진 언덕으로 올라가 가지고 다니던 소나무 지팡이를 거꾸로 꽂는다. “공부가 바르게 이루어지면 이 지팡이가 생명을 얻어 자라게 될 것입니다.” 정현이 그 말을 받는다. “입산시도 그렇고 수식노회(手植老檜)까지! 결기가 대단하네,” 수식노회는 자리에서 물러난 이가 직접 나무를 심어 새로운 뜻을 밝히고 다지는 뜻이기도 하다.

 

현준이 묻는다. “무엇을 공부하려 함인가?” 그러나 고운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저을 뿐이다. 자신도 아직까지 명료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당시 신라는 지방에서 호족의 세력이 커지면서 왕실과 조정의 권위가 약화되었으며, 중앙 정부는 주()와 군()에서 공부(貢賦)도 제대로 거두지 못해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고 있었다. 게다가 889년에는 진성여왕(眞聖女王, 재위 887~897)이 공부(貢賦)의 납부를 독촉하면서 각지에서 민란이 일어나 조정의 힘은 수도인 서라벌 부근에만 한정될 정도로 정치적 위기가 심화되었다.

 

최치원은 894년 진성여왕에게 10여 조의 시무책(時務策)을 제시하였고, 진성여왕은 그를 6두품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 관직인 아찬(阿飡)으로 임명하였다. 하지만 최치원의 개혁은 중앙 귀족의 반발로 실현되지 못했다.

 

진성여왕이 물러나고 효공왕(孝恭王, 재위 897~912)이 즉위한 뒤, 최치원은 관직에서 물러나 각지를 유랑하였다. 그리고 만년에는 가야산(伽倻山)의 해인사(海印寺)에 머물렀다. 908신라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기(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를 쓸 때까지는 생존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지만, 그 뒤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최치원의 유··선 통합 사상은 고려 시대의 유학과 불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유교 정치이념을 강조한 최승로(崔承老)와 같은 유학자조차도 불교는 수신(修身)의 근본이고 유교는 치국(治國)의 근원이라고 말할 정도로 고려 시대에는 유교·불교·도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특히 민간신앙과 풍습에서는 그것들이 서로 긴밀히 융합하는 모습을 띠었다.

 

그리고 고려 말기의 선승(禪僧)인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이름을 들어보면 유교와 불교가 서로 멀어 다른 것 같지만 그 실상을 알면 유교와 불교가 다르지 않다.(認其名則佛儒逈異 知其實則儒佛無殊)”유불일치설(儒佛一致說)’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조선 말기에 민족의 고유의 경천(敬天) 사상을 바탕으로 유··선의 사상을 융합하여 형성된 동학(東學)에서도 최치원 사상과의 연관성이 나타난다.

 

최치원은 문학에서도 뛰어난 성취를 보여 후대에 숭앙되었다. <사시금체부(私試今體賦)>, <오언칠언금체시(五言七言今體詩)>, <잡시부(雜詩賦)>, <사륙집(四六集)> 등의 시문집은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고 이름만 남아 있지만, <계원필경(桂苑筆耕)><동문선(東文選)>에는 그가 쓴 시문(詩文)들이 다수 전해지고 있다. 또한 대숭복사비(大崇福寺碑)’, ‘진감국사비(眞鑑國師碑)’, ‘지증대사적조탑비(智證大師寂照塔碑)’,‘무염국사백월보광탑비(無染國師白月光塔碑)’ 등 이른바 사산비문(四山碑文)’<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 등도 전해지고 있다. 그는 대구(對句)로 이루어진 4·6 변려문(騈儷文)을 즐겨 썼으며, 문장이 평이 하면서도 고아(高雅)한 품격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그밖에 <제왕연대력 帝王年代曆>, <중산복궤집(中山覆集)>, <석순응전(釋順應傳)>, <부석존자전(浮石尊者傳)>, <석이정전(釋利貞傳)> 등의 저술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법보종찰 해인사(法寶宗刹 海印寺)

 

법보종찰(法寶宗刹) 해인사는 불보사찰(佛寶寺刹) 통도사, 승보사찰(僧寶寺刹)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의 3대 사찰로 꼽힌다.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 중턱에 있는 사찰로서 팔만대장경이 세계기록유산,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로 150여개의 말사(末寺)를 거느리고 있다.

 

해인사는 한국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자 우리 민족의 믿음의 총화인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사찰로서 한국인의 정신적 귀의처요, 이 땅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 되어 왔다.

 

해인사는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잘 보존해야 할 소중한 성보(聖寶)를 많이 봉안하고 있는 사찰이다. 따라서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해인사를 찾아와 인류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있으며 국민들 또한 살아생전에 꼭 가봐야 할 사찰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탐방하는 유서 깊은 사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해인사는 효봉, 성철, 고암, 혜암, 법전, 원각 대선사(大禪師) 등의 역대 선지식 스님들을 배출한 명실 공히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큰스님들의 가르침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여름 수련회와 템플스테이 등을 통해 한국불교의 전통문화와 살아 있는 간화선(看話禪)을 세계인들에게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해인사는 신라시대에 그 도도한 화엄종의 정신적 기반을 확충하고 선양한다는 기치 아래 이른바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 세워진 가람이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은 4세기 무렵 중앙아시아에서 성립된 대승 경전의 최고봉으로서, 그 본디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동양문화의 정수라고 일컬어진다. 이 경전에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해인사(海印寺)라는 이름은 바로 이 '해인삼매'에서 비롯되었다.

 

해인삼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없이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 곧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에 비치는() 경지를 말한다. 이렇게 여실(如實)한 세계가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모습이요 우리 중생의 본디 모습이니, 이것이 곧 해인삼매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해인사는 해동 화엄종의 초조(初祖)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의 법손인 순응(順應)화상과 그 제자인 이정(理貞)화상이 신라 제40대 임금 애장왕 3, 8021016일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지금의 대적광전의 자리에 창건하였다. 이리하여 화엄종은 개화기를 맞던 신라시대를 거쳐, 해인사를 중심으로, 희랑(希朗)대사를 위시하여 균여(均如), 의천(義天)과 같은 빼어난 학승들을 배출하기에 이른다.

 

해인사에 관한 종합적인 문헌으로 가야산 해인사고적(伽倻山海印寺古籍)’이 있는데, 이는 해인사의 연기(緣起), 실화(失火)와 중창의 역사, 대장경의 인경(印經)에 관한 여러 사적과 문헌들을 모아 고종 11(1874)에 판각한 것이다. 가야산해인사고적에 수록된 문헌가운데 똑같은 이름의 가야산해인사고적’(고려 태조 26년에 이루어진 것)과 신라 최치원이 지은 신라가야산해인사선안주원벽기(新羅伽倻山海印寺善安住院璧記)’의 두 기록은 해인사의 창건에 대하여 비교적 소상하게 전해주고 있다

 

화엄사상과 해인사 創寺정신

 

화엄(華嚴)사상은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여 정립된 불교교리로서 법계연기(法界緣起) 개념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해인사는 화엄전교10(華嚴傳敎十刹) 중의 하나로 알려졌다. , 우주의 모든 사물은 그 어느 하나라도 홀로 있거나 일어나는 일이 없이 모두가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로 융합하고 있다는 이 법계연기라는 개념은 특히 다른 종파의 연기설과 구별하기 위해 '무진연기(無盡緣起)'로도 불린다. 사법계(四法界십현연기(十玄緣起육상원융(六相圓融상입상즉(相入相卽) 등은 이 무진연기를 설명하는 화엄사상의 골자이다.

 

사법계란 현상과 본체와의 상관관계를 사법계(事法界이법계(理法界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 등 넷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사물이 제각기 한계를 지니면서 대립하고 있는 차별적인 현상의 세계를 사법계라 하고, 언제나 평등한 본체의 세계를 이법계라 한다.

 

그러나 현상과 본체는 결코 떨어져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어서, 항상 평등 속에서 차별을 보이고 차별 속에서 평등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를 이사무애법계라 한다. 다시 나아가 현상, 그것도 각 현상마다 서로서로가 원인이 되어 밀접한 융합을 유지한다는 것이 사사무애법계이다.

 

이 사사무애법계는 화엄사상의 특징을 나타낸 것으로, 일반적으로 중중무진(重重無盡: 끊임없이 이어짐)의 법계연기라고 하며, 그 특징적인 모습을 열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10()은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은밀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 등으로서 십현연기문이라고도 한다.

 

동시구족상응문이라 함은 현세에 과거와 미래가 다 함께 담겨 있음을 뜻하고, 제법상즉자재문은 현상계의 모든 사물이 서로 차별하는 일이 없이 일체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하나의 위치를 지키고 다()는 다의 면목을 유지하는 가운데 하나와 다가 서로 포섭하고 융합한다는 것이 일다상용부동문이다. 이때 하나가 없으면 다가 없으며, 하나가 있으면 일체가 성립한다. 모든 것이 홀로 고립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도 되고 십으로도 되고 일체로도 된다는 것이다.

 

이에 근거하여 화엄에서 가르치는 일즉일체(一卽一切일체즉일(一切卽一일즉십(一卽十십즉일(十卽一)의 논리가 전개되는 것이다. 또한, 모든 현상의 각각에는 총상(總相별상(別相동상(同相이상(異相성상(成相괴상(壞相) 등 여섯 가지 모습이 함께 갖추어져 있고, 전체와 부분 또는 부분과 부분이 서로 일체화되고 있다는 것을 전개시킨 것이 육상원융의 이론이다.

 

화엄경에서 설하는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는 현상계와 본체, 또는 현상과 현상이 서로 대립하는 모습을 그대로 지니면서도 서로 융합하여 끝없이 전개되는 약동적인 큰 생명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 연화장세계에서는 항상 화엄경의 중심불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대광명을 비추어 모든 조화를 꾀하고 있다.

▲ 보물 제1736호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53  

 

화엄경은 우주의 질서를 미적으로 표현한 경전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통일국가의 상징이기도 하다. 화엄의 가르침은 서로 대립하고 항쟁을 거듭하는 국가와 사회를 정화하고, 사람들의 대립도 지양시킴으로써 마음을 통일하게 하는 교설이다. 따라서 중국이나 우리나라와 같은 전제왕권국가의 율령정치 체제를 정신적으로 뒷받침하는 큰 구실을 담당하였다.

 

조사(祖師)를 정할 때 인도의 마명(馬鳴)을 화엄조사로 받들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 대승경전을 약축하여 사상을 정립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의 화엄종주들이 한결같이 대승기신론을 즐겨 연구하였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최초로 화엄경을 번역한 승려는 동진의 각현(覺賢=佛馱跋陀羅, 359-429)이다. 그 뒤 한역본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종단이 두순에 의해 이루어졌다. 두순은 오교지관(五敎止觀)법계관문(法界觀門)을 저술하여 종지(宗旨)를 확립하였다. 두순의 제자 지엄은 화엄경 본문을 해석하는 법계관문과 화엄경의 요지만을 모은 공목장(孔目章), 그밖에도 오십요문답(五十要問答)일승십현문(一乘十玄門)을 저술하였다.

 

지엄의 제자로는 중국의 법장과 신라의 의상(義湘, 625~702)이 있다. 의상은 지엄의 인가를 받은 뒤 신라로 돌아와 원효(元曉, 617~686)와 함께 화엄사상을 전파하였다. 법장은 중국에 화엄학을 꽃피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은 중국 화엄종의 기초를 확립한 대표적인 저술이다. 법장의 문하에는 혜원(慧苑, 673~?)이 있고 혜원의 문하에서는 징관이 나왔으나, 징관은 수소연의초(隨疏演義鈔)를 지어 혜원의 간정기(刊定記)가 비정통이라고 논파하였다.

 

징관의 법맥을 이은 종밀은 원인론(原因論)을 지어 유··도 삼교의 사상을 대비시킴으로써 불교의 참뜻을 선양하였고, ()와 선()의 병행을 논하는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를 저술하여 고려의 지눌(知訥, 1158~1210)에게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종밀의 사상은 송대에 와서 정원(淨源)으로 이어졌는데, 정원(淨源, 1011~1088)은 고려의 의천(義天, 1055-1101)과 사상적인 교류가 많았던 화엄종사이다.

 

해인사 창건의 참뜻은 해인(海印)’이라는 단어에 응집되어 있다. 해인이라는 말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인삼매는 일심법계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며 부처님 정각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곧 있는 그대로의 세계, 진실된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객관적인 사상의 세계이니 바로 영원한 진리의 세계이다. 해인삼매는 또한 오염됨이 없는 청정무구한 우리의 본디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며, 우리의 마음이 명경지수(明鏡止水)의 경지에 이르러 맑고 투명해서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그대로 비치는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모습을 한없이 깊고 넓으며 아무런 걸림 없는 바다에 비유해서 거친 파도, 곧 우리들 마음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 비치는 경지를 해인삼매라 하였다. 이러한 여실한 세계가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모습이요, 중생의 본모습이니 이것이 곧 해인삼매의 가르침인 것이다.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해인사

 

해인사는 특히 고려 때 만들어진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인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다. 신라 때 지어진 절로 의상의 맥을 잇는 제자인 순응과 이정 스님에 의하여 창건된 화엄종 사찰이다. 해인사가 법보종찰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조선 태조 때로 강화도에 보관하던 대장경을 지금의 서울시청 부근에 있던 지천사로 옮겼다 다시 해인사로 옮기면서부터이다. 이후 세조와 성종 대를 거치면서 건물을 새로 짓는 등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주차장에서부터 일주문까지는 제법 올라가야 하는데, 그 길에 성보박물관이 있으니 꼭 둘러보도록 하자. 해인사의 귀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다양한 목판을 전시해 우리 전통의 우수한 목판인쇄기술을 알게 한다. 또한 불교조각실의 앉은 채 입적한 듯 사실적인 조각 수법이 돋보이는 목조희랑조사상과 팔만대장경을 소재로 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가 특별한 볼거리이다.

 

해인사의 본전은 화엄종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는 대적광전이다. 대적광전 뒤가 바로 장경판전으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의 중심이다. 팔만대장경은 원나라의 침입을 받은 고려가 불력으로 물리칠 수 있기를 기원하기 위해 만든 대장경으로, 이전에 만든 대장경이 불타버린 후 만들었다 해서 재조대장경으로도 불린다. 나란히 선 수다라장과 법보전에 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데 자연의 원리를 이용해 햇빛, 온도, 습도, 환기 등을 조절하는 최고의 보관소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해인사 팔만대장경 /사진=문화재청    

 

대장경이란 범어로 세 개의 광주리라는 뜻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경(), 부처를 따르는 사람들이 지켜야 알 도리를 밝히고 있는 율(), 부처의 가르침을 해석하고 있는 론()으로 구성된다. 세계적으로 여러 종류의 대장경이 있지만 그 완성도 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바로 팔만대장경이다. 경판의 개수가 팔만 개라 해서 이름 붙었으며, 경판의 크기는 가로 70, 세로 25, 두께 3.5로 양면에 한 자 1.5크기로 450여 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해인사는 한국불교 성지이며 또한 세계문화유산 및 국보 보물 등 70여 점의 유물이 산재해 있다. 국내 최대 사찰로서 명산인 가야산 자락에 위치하여, 가야산을 뒤로하고 매화산을 앞에 두고 있어 그 웅장한 모습과 주변 경관이 어우러져 경의로울 뿐 아니라 송림과 산사가 어우러져 연출하는 설경을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경에 젖게 한다.

 

청정도량 해인사는 우리들 마음의 고향이다. 그래서 황량한 대지를 방황하는 현대의 이방인들을 다정한 고향의 손짓으로 부르고 있다. 팔만대장경, 높은 탑, 자연의 그윽함이 있다고 그런 것이 아니다. 해인삼매의 한 생각, 맑은 마음 그 거룩한 도량이 바로 해인사이기 때문이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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